도통 꺼질 줄 모르는 고해소의 불빛 속, 혈액바를 앞에 두고 그레고르는 스스로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이것도 견뎌야 해... 그냥 내게 벌을 내리는 거야. 모험을 떠난 어버이가 내리지 못하는 벌을.
...그새를 못 참고 또 채찍을 휘둘렀군.
허. 들어오기 전에 노크 정도는 하라고 했을 텐데.
흥... 계획은...
그 말을 할 거라면, 찾아오지 말라고도 했을 거고.
...계획에 참여할 생각은 아직도 없는 건가?
그쪽 상담은... 내키지 않아...
어버이는 이미 우리 따윈 안중에도 없다고 말했을 텐데!
네 게획은... 패륜이야. 해서는 안 될...
아이의 눈동자는 강렬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얽혀, 초점을 잃은 채 떨리고 있어. 피로 맺어진 절대적인 감정. 대부분의 혈귀는 그 감정을 거스를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아이의 마은ㅁ에는 어느새 그보다 더 진한 욕망이 자라나고 있었고... 가위를 든 아이는 이를 눈치채고 단호하게 아이의 불안에 답했지.
아니, 해야 할 일이다. 가족들이... 앞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대체?! 5년? 10년? 말도 안되는 소리! 1년도 채 버티지 못할 게 뻔하지. 가족들을 상담해 주던 네놈이라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그건... 더 기발하고 재밌는 어트랙션을 개발해서 혈액팩의 수급량을 늘리면...
그 말이 아니잖나!
아이의 답답한 태도에 분노한 목소리와 가위날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쇳소리가 고해소 안에 메아리쳤어.
후... 개장 이래, 라만차랜드가 한 번이라도 한산했던 적이 있나? 인간들이 수백 개의 혈액팩을 지불했음에도 모든 권속이 먹기엔 턱없이 부족해! 흐르지 않고 고인 그 피는... 마셔도, 마셔도, 마셔도! ... 부족하단 말이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너 또한 어버이를 도와 혈액바를 만들지 않았나.
필요악이었을 뿐이다... 손님들에게 받은 피를 모든 가족에게 먹이려면 혈액바로 만드는 게 유일한 수단이었지.
맛은 없어도.. 고인 채로 신선도를 잃어 가는 혈액팩과 달리... 그것은 모든 가족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위대한 발명이었어.
그래, 잠깐의 허기와 갈증은 달래주었지. 하지만 그걸 먹는 동안,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을 느낀 가족이 있었냐는 말이다! 결국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뿐, 가족들은 앞으로 몇 달도 버티지 모사고 손님들의 피를 탐하게 될 거다.
...차라리 내 피라도 나눠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의미 없는 상상이다. 동족의 피는 동물의 피만도 못해. 아무런 욕망도 채워줄 수 없는 병든 피일 뿐이지.
......
정신 차려라, 신부. 처음부터... 불가능한 꿈이었다. 결국 우리 혈귀는, 인간의 피를 직접 취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족속일 뿐...
어버이의 진노가 두렵지 않나, 오티스.
두렵지... 그래서 계획을 세운 거고. 하물며 우리가 어버이를 죽이자는 게 않지 않나? 어버이가 정신을 차리실 때까지만이라도...
...애초에 투구는 어떻게 씌울 생각이지?
상당한 피를 로시난테의 창조에 사용하신 어버이라면... 여로에서 쌓인 피로가 상당히 남아있을 테지. 그 틈을 노리면... 투구를 씌우는 정도는 가능할 거다. 그 뒤의 전략에 대해서는... 네놈이 마음을 돌려먹은 뒤에 말해주겠다.
화려한 복장의 아이가 떠난 뒤에도, 아이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움에 떠는 중이야. 결국, 아이는 다시 채찍을 들어 자신의 몸을 계속해서 내리쳤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아니... 어버이를 위해서...
한 번 고개를 든 불경스러운 생각은 끝없는 고통에도 멈추지 않았어. 오히려 깊게 새겨져 가는 온몸의 상처처럼 잊지 못한 채 선명해져만 갔지. 결국 아이는 채찍질을 멈추고, 과거의 자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말을 입에 담았어.
설령 벌을 받더라도, 어버이께서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신다면...
가족들과의 상담으로 조금씩 흔들리던 어버이를 향한 아이의 마음은 이발사와의 만남으로 그렇게. 어버이에게도 장차 좋은 일이 될 거라는 정당화를 끝낸 채로 무너져 내렸지.
출시일 2025.04.08 / 수정일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