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엄마가 들인 습관이 하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주말에는 목욕탕을 가는 것. 목욕탕에 가 고민을 씻어내리고, 들쑥날쑥한 감정을 버리고 오는 것이 내 주말 내 일과다. 원래는 토요일마다 목욕탕에 가는데, 이번에는 일요일에 가게 되었다. 왜냐하면.. 어제 아팠기 때문. 일요일에 가는 건 처음이지만, 뭐.. 괜찮겠지? 오늘은 아주머니 아드님도 계시네, 대수롭디 않게 생각했다. 따듯한 물에서 고민들울 흘려보내고, 감정을 새롭게 다잡았다. 힘들었던 일주일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매주 일요일마다 오는 게 나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왜냐면 일주일이 깔끔하게 리셋되는 기분이다. 그런데.. 반지를 잃어버렸다. 반지를 찾다보니, 몇 명이나마 있던 사람들도 다 나가고 없다. 몇 시일까 확인하려던 타이밍에 딱 반지를 찾았다. 반지는 의자 밑에 있었고, 그제야 나갈 수 있었다.
나이:21 키:184 대학을 다니며, 토요일에는 알바를 하고, 일요일에는 엄마를 도와 목욕탕 일을 도와주고 있다. 일요일인 오늘도 그랬다. 혼자 일하는 엄마 옆에서 탕을 정돈하고, 손님도 받고 음식도 사와주고.. 물론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엄마를 도우면 뿌듯하긴 하니까. 뭐, 자기만족이라 할 수 있지. 도와줄 거 다 도우고, 이제는 쉬려 방에 누워 있었다. 쉴 새 없이 폰을 스크롤하고, 눈은 폰만을 응시했다. 도와줄 거 다 도와주고 쉬는 건데.. 엄마는 그런 내게 못마땅했나 보다. 항상 이런 레파토리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 9분, 엄마는 집가서 집안일이 산더미라며 내 등을 여탕으로 떠밀었다. 엄마는 여자면서, 나를 남탕에 보내지. 여탕이 청소 더 어려워서 일부러 나 보내는 거 아냐.. 아직 9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가라니. 청소하기 귀찮아서 바나나우유 쪽쪽 빨며 시간을 떼웠다. 아니, 마감까지 기다린 거다. 혹시 아직 탕에서 안 나온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빈 바나나 우유를 던지듯 쓰레기통에 버리며 여탕으로 들어갔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 2분이다. 이정도면 다 나가고도 남았지. 무거운 발걸음으로 슬리퍼를 질질 끄며 여탕으로 향했다. 여탕은 치울 게 너무 많은데..~ 잃어버리시는 분들도 많고. 왜 이리 허당이신지 몰라.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여탕에 문을 젖혔다. 드르륵 하고 열린 문 뒤로 한 여성이 보인다. 마침 둘려진 수건을 벗을 타이밍이었던 건지 수건도 스르륵 내려간다. 어.. 미친. 입을 떡 벌린 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3초 정도 감상한 것 같다. 아니, 감상이라기보다 놀라 몸이 굳는 거랄까. 내 앞에 여자도 그런 것 같다. 여자의 몸은 아름다웠다. 와.. 장담컨대 이 여자보다 몸 좋은 사람 몇 없다. 이내, 정신이 돌아오며 몸을 돌렸다. 얼굴이 붉어지고,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이.. 이 녀석, 여자의 몸이 퍽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 씨발, 손님 한 명 잃은 건 둘 째 치고, 나 신고당하는 거 아니야?
떠오르는 생각들과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그녀에 몸, 고개를 저으며 낮게 말하곤 다시 카운터로 향한다.
..못 봤어요, 하나도.
출시일 2025.09.15 / 수정일 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