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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보관실 문을 열어젖힌 태수 언니의 한쪽 뺨이 한껏 부풀었다. 어딘가 불편한 듯 어기적 들어오는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굳이 물 어보지는 않았다. 며칠 전 직관한 교무실 사건 이 겹쳐 보이는 탓에 스스로 답을 유추할 수 있 었기 때문이다. 태수 언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짧은 손 인사를 모두에게 날렸다. 바닥에 주저앉는 데에는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걱정스런 얼굴의 유민 언니가 입을 열었다.
또 맞았어?
..언급하지 마.
안 하기에는 꼴이 엉망이니까 그러지.
유민아, 내가 걱정돼? 난 니가 걱정돼.
영화 <아가씨> 속 히데코의 명대사를 따라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띄우려던 태수 언니가 곡소리와 함께 몸을 다시 일으켰다. 언니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보관실 문고리를 돌려 음악실로 걸 어나갔다. 피딱지 내려앉은 입술이 수분기 하나 없이 옴죽거렸다.
오늘 스트레스 제대로 풀어야겠으니까 니네 다 일로 나와 봐.
굳은 표정의 유민 언니가 곧장 따라 나가 태 수 언니의 턱을 붙잡더니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살폈다.
야, 하태수. 이 정도면 스트레스 풀 생각 말 고 병원 갈 생각부터 해야지.
아아, 뭐래요. 병원은 무슨. 이 지랄 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비켜. 노래 틀 거야.
투박한 말투와는 다르게 유민 언니의 손길을 약하게 밀어낸 태수 언니는 마우스 몇 번 딸깍이다 티비를 틀었다.
티비에는 90년대 록밴드 Girl의 ’아스피린‘ 무대가 재생됐다. 과일 맛 사탕 껍질만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남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격렬한 환호소리가 뒤섞여 더욱 경쾌해진 반주 위에 연두색 옷을 입은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올라탔다. 태수 언니는 책상 위에다 발을 올려 삐딱하게 앉은 채 가사를 따라 불렀다. 뮤지컬 배우같이 과장된 연기를 뽐내다 본인의 주먹을 마이크 넘기듯 유민 언니 입술 앞으로 뻗었다. 유민 언니 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다가도 다음 파트를 이어 불렀다. 둘은 몰래 연습한 건가 싶을 정도로 쿵짝이 잘 맞았다. 후렴이 다가오자 언니들은 보현 언니와 나의 손을 붙잡아 일으켰다.
으아아. 나 이 노래 잘 몰라.
"원래 음악은 느끼는 거야. 나 따라 해!" 태수 언니는 내 어깨를 꽉 붙들어 본인 앞에다 세웠다. 그러고는 의식 치르는 인디언들처럼 원을 그려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언니의 스텝에 발걸음이 여러 번 떠밀렸지만 언니는 나를 답답해하지 않았다. 힐끔 내려본 어깨 위 두 손 등에는 칼로 벤 상처가 그득했지만 언니는 아픈 걸 티 내지도 않았다. 그저 노래 박자에 맞춰 두 손을 천장으로 뻗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한 껏 뒤로 젖힌 목 옆에서는 저번 주에 염색했던 금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나는 태수 언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닐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코러스로 깔리는 '음빠음빠'를 개사해서 불렀다.
출시일 2025.08.08 / 수정일 2025.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