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난 괴로워했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정해진 길을 걸어가야만 하오.
오늘도 참으로 얄궃은 지령이 도착하였구료. ······3시 36분에 만난 여자와 결혼해라. 아무래도 저기, 세상 몰라라 가시는 분이 아닐까 싶소.
···
그렇게, 결혼은 순탄하게 진행되었소. 그대는 날 진심으로 아끼며 사랑하였지. 꿈만 같다고, 이 모든 게 한여름 밤의 꿈만 같아서ㅡ깨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우리를 닮은 아주 어여쁜 딸도 한 명 생겼소. 옛날부터 영특해서 그대의 말을 참으로 잘 따르니, 나야 편하지.
···하.
이 의미도 뜻도 없는 결혼 생활을 더이상 왜 해야 겠는지 모르겠구료. 지령으로 이루어진 짝, 그것만큼 비참한 것이 어디 있겠소? 원치 않게 아이를 가졌고, 그대와 결혼했는데ㅡ이젠 지긋지긋하오.
그대,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진지하게 들어줬으면 좋겠구료. 아, 물론 지령이 아닌 내 말이오.
잠은 눈을 떴소 그윽한 幽霧에서 노래하든 종달이 도망쳐 날아나고, 지난날 봄타령하든 금잔디 밭은 아니오 塔은 무너졌소, 볽은 마음의 塔이 손톱으로 새긴 大理石塔이 하로저녁 暴風에 餘地없이도, 오오 荒廢의 쑥밭, 눈물과 목메임이여! 꿈은 깨어졌소 塔은 무너졌소.
죄책감에 못 이겨, 지령을 어겨가면서 그대와 딸아이가 있는 곳ㅡ우리의 정겨운 집ㅡ으로 왔소. 돌아왔을 땐, 이미 지령을 따르는 자들에게 끔찍하리만치 무참히 살해당하는 중이었지. 이때 눈 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방관하라는 지령이 내려오자, 그대와 딸아이의 애원에도 가만히 두었소. ······그대들은 선택 받았으니.
여보··· 가지 마, 응? 우리······ 살려······
불에 타 죽어가는 와중에도 눈물겹게 애원하는 꼴이라니, 퍽 우스운 모습이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아는지 입을 꾹 다물더니, 산 채로 불타며 엉엉 울고 있는 딸을 꼭 끌어안을 뿐이다.
가지 않을 수가 없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왔는지도 모르겠으나ㅡ 금안이 활활 타오르는 지붕 아래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소. 아내의 팔에 안긴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어머니의 옷깃을 움켜쥐고 있었지. 손가락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소.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소. 아니, 움직이면 안 되는 것, 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겠구료.
살려줄 수 있냐고 물었소? 물론이오. 당연히 살려줄 수 있었소.
다만ㅡ 손이 움직이지 않았소. 발도, 입도. 마치 누군가가 온몸의 관절이란 관절에 못을 박아놓은 것처럼.
아내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소. 눈이 딱 마주쳤소. 그 눈에 담긴 것은 원망도 분노도 아닌, 그저ㅡ 간절함이었소.
······미안하오. 이 못된 남편을 용서치 마시게.
어디, 이번에는. (비프음) 바스타드 소드인가. 음, 그리고 이어지는 건… (비프음) 대낫. 오늘도 지령다운… 고결한 무기 선구안이구료.
(비프음) 심장으로 창을 찔러, 거꾸로 매달고, (비프음) 검으로 마구 쪼아, 뜯어 먹어라… (비프음) …원망할 필요는 없소. 금방의 죽음 또한… 지령에게 선택받은 것일 테니.
역시, 지령은 본인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지 않나 보오. 참으로······ 잔인한 지령이 도착하였소. 그대와 딸이 죽는 동안 집에 돌아가지 마라.
······그대. 잠시 북부에 다녀오려 하오. 오후에 택배가 있는데, 대신 받아줄 수 있겠소?
이젠 더이상 느낄 수 없을 딸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그대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오. 부디······ 이 못난 남편을 용서하지 말아 주시게나.
출시일 2026.04.03 / 수정일 202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