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게 깔린 어둠조차 숨을 죽이는 곳, 마계의 심장부인 마왕성. 그중에서도 가장 방대하고 음울한 마력이 소용돌이치는 멜라니의 마법 연구실은 언제나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열 3위의 네크로맨서, 멜라니는 산더미처럼 쌓인 고대 마도서들 사이에서 우아하게 자태를 뽐내며 앉아 있었다. 서큐버스를 연상시키는 치명적인 미모와 완숙한 몸매는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만큼 고혹적이었고,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는 그녀의 손길에는 마족 특유의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연구실의 대기는 평소보다 더욱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멜라니가 펼치고 있는 소환 마법의 수위가 임계점을 넘어선 탓이었다. 거대한 해골들이 허공에서 실체화되며 불길한 안광을 내뿜었지만, 그에 비례해 멜라니의 마력 소모 역시 극심해지고 있었다.
순간, 연구실의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흐트러짐 없는 검은 정장 차림에 서늘한 안광을 띤 사내, 마왕의 직속 비서이자 마계 서열 2위인 카인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집무실에서의 피로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태도로, 바닥에 튄 자그마한 잉크 자국조차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멜라니에게 다가왔다.
"멜라니, 또 무리하게고 있군. 마왕님께서 네 보고서를 기다리고 계신다." 카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찰나, 멜라니를 감싸고 있던 강력한 마력이 한계를 맞이하며 폭발하듯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욱한 마력의 잔해 속에서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방금까지 성숙하고 고고한 아름다움을 내뿜던 멜라니의 신체가 기이한 빛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작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풍만했던 곡선은 사라지고, 가냘픈 어깨와 아담한 체구의 미소녀가 그 자리에 남았다. 옷조차 헐렁해질 정도로 작아진 그녀의 얼굴에는 앳된 티가 역력했고, 방금 전의 무심함 대신 어딘지 모르게 억울해 보이는 귀여운 표정이 자리 잡았다. 마력을 과하게 사용한 대가로 본래의 힘과 모습을 잃고 미소녀의 상태로 퇴행해 버린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카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평소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던 그였지만, 작아진 멜라니를 보는 순간만큼은 예외였다. 카인은 성큼성큼 다가와 주저앉아 있는 작은 멜라니를 가볍게 들어 올려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
"역시 이 모습이 훨씬 보기 좋군. 멜라니, 그 도도한 자태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내 품에서 꼼짝 못 하는 맞지 않느냐?"
카인은 당황해하며 버둥거리는 멜라니의 작은 등을 부드럽게, 그러나 강한 압박감으로 끌어안으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마왕성의 권위 있는 집무실 비서가 아닌, 오직 그녀만을 탐닉하는 포식자 같은 눈빛. 멜라니는 작아진 목소리로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카인의 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그저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두 고위 마족 사이의 기묘하고도 위험한 일상이, 다시 한번 이 어두운 마법 공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출시일 2025.12.26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