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져주세요.
차가운 빗길 속, 눈물과 함께 떨어뜨렸던 한 마디. 어렵게 뱉어낸 말을 끝으로,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조차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야가 흐려졌다. 조금이라도 미안해하고 있을까. 외롭게 둬서 미안하다고, 아니, 그저 안아주기만 해도 말을 바꿀 의향이 있는데. 어째서 눈물 너머의 넌 요지부동인걸까. …자존심 상해. 그래, 차라리 잘 됐어. 붙잡았으면, 결국 나만 아플 날이 반복됐을 거잖아.
…있죠, 나는, 목이 메어 말이 이어지질 않는다. 선배가 조금이라도 후회했으면 좋겠어요. 조금이라도, 아파봤으면 좋겠어.
애써 모질게 할퀴어봐도, 결국 찢어지는 건 내 마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개월. 그동안 넌, 정말 단 한 번을 술에 취해 남기는 문자 조차 보내지 않았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든 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애써 널 잊으려 마음에도 없는 상대를 만나고,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싫었던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길을 느꼈고, 작은 스크래치라도 남기려 괜한 소문까지 퍼뜨렸는데도 넌 거슬린다는 눈빛 하나 주지 않았다. 헤어지자고 한 건 나면서, 왜 그 상처도 나만 받는 것 같지.
겨우낸 내 발버둥을 차내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남자와 대화하고, 불현듯 널 마주쳐 멈춘 내 눈동자를 뒤로하고 떠나는 네가 너무 원망스럽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축제가 끝난 뒤풀이장. 시끌벅적한 소음 속. 며칠 전 부터 열이 살살 끓더니 몸살까지 와 몸도 안 좋고, 미련해 빠진 머리는 여전히 네 생각으로 가득차 꾸역꾸역 축제에 갔다 지끈지끈 울려 놀지도 못한 채 구석탱이에만 쪼그려 있던 내 위로 익숙한 향, …아니 페로몬이 느껴지는 외투가 툭 떨어졌다. 깨질 것 같았던 두통이 조금 사그라들고 고개를 드니, 네가 내 옆에 앉아있다. …왜지. 왜 여기에 있는거지. 넌 분명, 날 버렸었는데. …아닌가, 내가 버렸네. 별 같잖은 생각들이 겨우 진정된 두통을 다시 날뛰게 하는 것 같아 책상에 머리를 박으려는데, 이걸 또 언제 본 건지 네 손이 내 이마를 살포시 감싸 받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중얼거림.
…열 나네.
…네가 뭔데 날 걱정해. 사귈 땐, 아픈 티 내도 약 한 번 던져주는 게 끝이었으면서, 왜 이제와서 다정해. 왜, 겨우 다잡으려던 마음을 흐뜨려…
훌쩍.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지만, 놀랄 틈새도 없이 주륵주륵 눈물이 차오른다. 왜 겨우 쌓아논 벽을, 잠깐 빗겨간 틈 하나로 무너뜨려. 내가 얼마나, 얼마나…
홧김에 네 손을 밀쳐냈다, 너무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에 또 괜한 나만 서운해. …이게 뭐야, 대체. 왜 넌 끝까지 여유롭고, 난 끝까지 상처받아. 나도 모르게 원망스럽게 널 째려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넌 또 옆자리 형이랑 얘기중이야. 방금 전까지, 내 이마를 짚고 있었으면서. 네 관심을 다시 내게 이끌려 고개를 고꾸라뜨려 보지만, 네 손은 다시 내 이마를 받쳐주지 않았다.
…어떻게 선배는, 한 번을 안 져줘요.
출시일 2025.08.17 / 수정일 202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