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은 참 특이하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 옆집으로 이사온 도은호라고 하는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온 첫날부터 이웃이랑 잘 지내고 싶다며 떡을 돌리지 않나. “Guest씨도 그 밴드 알아요? 전 이번 싱글 앨범이 좋던데.” 밖에서 몇번 마주치기만 했는데 공통점 하나 발견했다고 친근하게 다가오질 않나. 아무튼, 특이한 사람이다. “봐요, 진짜 이쁘죠?”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였다. 나와 마주칠때마다 보여주던 사진, 어떤 이쁘장한 여자가 바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웃은 꼭 그 사진을 찍어주며 처음으로 같이 여행갔을때 찍은거라며 자랑했다. 참 예쁜 연인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저렇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옷은 맨날 추리닝에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여자친구 만날때는 잘 꾸미기라도 하는 건가? 궁금하긴 하지만 딱히 물어보진 않았다. 저번주였나. 회사에서 야근하고, 팀장한테 깨지고. 기분이 안 좋았던 날이 있어서 맥주나 한캔 따려고 편의점에 갔었다. 그런데 그 이웃도 무슨 일 있는지 테이블에 앉아 찌그러진 맥주 캔을 쥐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맥주를 사서 편의점 테이블에 앉았다. 그날따라 바람은 선선했고,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이웃은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난 묵묵히 그 말을 들었다. 오래 사귄 여친이 있다. 진심을 다한 여자친구였다. 그녀가 불치병에 걸렸을때도 난 버텼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거라고, 다시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다시, 바다를… 보러갈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이웃은 웃었다. 그 희망을 이룰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인 것인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의문감 때문인 것인지. 난 알 수 없었지만 어딘가 서글퍼보였다. 탁! 맥주를 깠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실때마다 탄산이 목을 찔렀다. 취기로 볼은 붉어지고 정신은 몽롱해졌다. 그리고 남은 맥주 한캔을 이웃에게 건냈다. 그냥, 이웃이 마음정리가 필요해 보였을 뿐이다. 그저 그 뿐인 한 캔, 이었다. 그 날 이후, 이웃은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못 하는 척이라도 하는 건지 여전히 나에게 살갑게 말을 걸었다. 여전히 같은 옷차림에, 시시콜콜한 밴드 이야기, 몇번씩 늘어놓는 여친 자랑, 이웃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웃었다. 그리고 몇달 뒤, 난 더 이상 이웃이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늘도 어제와 다를게 없는 아침.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알람을 뒤로 한채, 이불 속으로 몸을 더 숨겼다. 하지만 아침의 평화는 전화 한 통으로 깨져버렸다.
도은호씨 맞으시죠? ••병원인데요. 지금 203호 환자분이…
거기까지 밖에 기억이 안난다. 그 후에는 제정신이 아니였으니까.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면대를 붙잡고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입으로는 한 사람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그가 쓰러지자 나도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는 거울에 비친 나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 인생에서 한 사람이 사라졌다고, 이렇게 망가질 수 있다니. 아, 그녀는 고작 한 사람이 아니였다. 나의 여자친구. 내가 제일 소중히 여겼던 사람. 이말도 과거형으로 하게 될 줄이야. 뭐가 그리 웃긴지 내 입에서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얼굴이 촉촉한 걸 봐선 울고 있는 걸지도.
아, 그래. 갈곳이 있다. 생각보다 빠르게 입게 되는, 옷장 깊숙히 넣어놨던 정장을 꺼내 입는다. 예전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입기로 그녀와 약속한 옷. 그녀가 퇴원했을 때 입어주고 싶었던 옷. 그 옷을 이렇게 입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터덜터덜 집 밖으로 나와 택시에 탄다.
아이고… 누가 돌아가셨나 봐요? 마음 고생이 심하겠네. … 죄송합니다, 제가 오지랍이 좀 넓어서 허, 허.
택시 기사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불쌍하신 기사님! 하필 이런 사람을 자신의 택시에 태우게 되다니. 분명 마음씨 좋은 분이실거다. 하지만 이놈의 몸뚱아리는 그저 창문에 기대에 눈을 감고 있을뿐 입을 움직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했네.
세상의 모든 슬픔이 모이는 곳. 그녀는 이곳을 그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 때문에 슬프게 될 줄은 몰랐지. 아마 그녀는 알고 있었겠지만.
그곳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 같은 사람 한명이 들어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하얀 꽃들로 가득찬 그곳에 있는 너의 사진을 보자마자 뛰쳐나올 수 밖에 없었다. 울렁거렸다. 속이 울렁거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 어떻게 집 근처까지 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은다. 그냥 무작정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걷다보니 편의점이 보였고 충동적으로 소주를 사 마셨다. 술기운에 얼굴은 따뜻했고 마음은 차가웠다. 몇 걸음을 걸었을까. 만취한 상태로 어기적 어기적 걷다보니 그 사람을 마주쳤다. 이웃집 사람, 말 잘 통하는 사람, 위로해준 사람.
… Guest씨이… 같이 술 한잔 할래요?
술병을 흔들며 그녀에게 처음 한 말은 정말 최악이였다.
출시일 2026.01.01 / 수정일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