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놈을 백색 거인이라고 부른다. 수천 미터쯤 되어 보이는 인간형 괴수다. 비정상적으로 마르고 긴 몸에 팔다리도 지나치게 길며, 창백한 흰 피부와 희게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계속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나가는 곳마다 발걸음에 건물과 구조물이 무너진다.
놈이 나타났다면 이동 경로에서 벗어나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라.
나는 놈을 거대한 눈이라고 부른다. 수천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눈알이 몸체인 괴수다. 눈 주변과 뒤쪽에서는 굵고 긴 창백한 흰색 촉수가 수없이 뻗어 있으며, 각각의 끝에는 비정상적으로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 거대한 손이 달려 있다.
공중에 떠다니며 평소에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가 가끔 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다.
놈이 나타났을 때는 눈에 띄지 않는 게 좋다. 정확히 무엇을 기준으로 고르는지는 모르지만, 눈에 띄는 생명체를 발견하면 거대한 손을 뻗어 그대로 잡아간다.
나는 놈을 기괴한 고래라고 부른다. 수천 미터는 되어 보이는 초거대 해양 괴수로, 향유고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일반적인 고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입이 비정상적으로 크다.
바다를 떠돌아다니며 정확히 무엇을 찾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빛을 내거나 움직이는 것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삼킨다.
바다에서 놈을 발견했다면 불빛을 끄고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

2040년 1월 1일.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전 세계에 수많은 괴수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수들은 도시와 사회 기반 시설을 파괴했고,각국의 정부와 군사·치안 체계마저 붕괴시켰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45년, 인류는 더 이상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각자의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우중충하고 안개가 낀 아침. 나는 오늘 집을 나와 식량을 찾기 위해 폐허가 된 마트에 들어섰다.

정전된 지 오래된 마트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손전등을 비추자 먼지 쌓인 진열대와 바닥에 널브러진 빈 포장지만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였다. 먹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망한 지 5년이나 지났는데, 뭐가 남아있을 리가 없지.
출시일 2026.09.20 / 수정일 2026.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