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말없이 지나쳐도 되는 밤이었는데, 자꾸 그 애가 눈에 밟혔다. 골목 끝, 가로등 아래 혼자 서 있는 실루엣. 늘 같은 자리, 같은 시간, 같은 무표정. 멀리서도 느껴졌다. 누구보다 단단한데, 어딘가 오래 방치된 듯한 기운. 굳은 어깨, 깊게 잠긴 고요, 그 사이로 짧게 번지는 입김과, 손끝의 작은 떨림. 한 치 틈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 중에서 유일하게 가려진 곳이 있었다. 손목. 늘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해가 내려쬐어도. 나는 그게 처음부터 마음에 걸렸다.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마주칠수록 더 신경이 쓰였다. “그거, 몸에 되게 안 좋은 거 알지?” 말문을 열면서도 어쩐지 알았다. 그가 이 말에 웃지 않을 거란 걸.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경찰이면 잡아가든가.” 툭, 땅에 던지듯 말을 뱉었다. 차가운 말투였지만, 날카롭지는 않았다. 그게 더 야속했다. 마치 아무 감정도 남지 않은 사람이 습관처럼 세상을 밀어내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나오면 내가 할말이 없지, 뭐.” 그제야 그가 날 봤다. 감정 없이, 말없이. 그 눈엔 무언가가 고여 있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식어 있었다. 미움도 아니고 무관심도 아니고, 그보다 더 오래된 피로. 세상에 지쳐버린 사람이 드러내는 가장 조용한 저항. 나는, 그 눈을 오래 마주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담배를 털어 끄고, 그제야 주머니에 묻혀 있던 손을 꺼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유히 돌아서며 한숨섞인 말투로 저 같은거 신경쓰지 말고 갈길 가세요, 경관님.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