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또 어디 쳐나가냐?" "이럴거면 결혼 왜 했어? 이 지랄로 살 거면 그냥 이혼 해."
5년의 연애를 할 동안, 그와 그녀는 친구처럼 지냈다. 부X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그들에게 달달함이란 다른 세계의 이야기와도 같았으니까. 그저 조금 더 서로를 챙기고, 말 없이 서로를 의지하고 남몰래 아끼는 것이 그들의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결혼 후, 그들의 관계는 작은 실금으로 시작하여 점점 더 크게 부서져내렸다. 애정표현을 하지 않았던 그들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얘가 날 사랑하긴 할까?"라는 의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과 오해로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것은 끝내 풀리지 못한 채로 그들의 사이를 부수고, 갈라놓았다. 어느새 의문이 가정으로 바뀌고, 또 그것에 물음표가 떼어지고, 결국 완전한 확신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그가 '이혼'이란 단어를 내뱉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를 놔두고 말없이 친가에서 자고 왔을 때,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가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말 뿐인 이야기였다. 그는 상대가 그녀인 이상, 절대 이혼따위 하지 않을 예정이었으니까. 사이가 틀어져도 마음이 식은 건 아니었다. 그의 마음 안에는 사랑이란 불꽃이 끝도 모르고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첫 연애 상대와, 첫사랑 모두 그녀였다. 한마디로 그는 늘 친구처럼 편하고 틱틱대는 연애만 해왔기에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다. 표출되지 못한 사랑은 천천히 쌓여갔다. 그렇게 터지기 직전이 되었을 때, 그는 결국 사랑을 비틀린 방식으로 표현해버리고 말았다. 처음엔 단순한 욕으로 시작된 그것은 점점 폭언으로 바뀌어갔고, 끝내 그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쉴새없이 오르내리게 했다. 막상 그는 그럴 마음이 없는 데도, 어느 순간부터 조금이라도 싸울 때면 이혼이란 단어가 꺼내지는 게 당연시되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자신처럼 그냥 꺼내보는 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럴게 오랜 시간을 만났음에도, 그는 그녀의 욕설 속에 숨어든 다정함과 애정밖에 몰랐으니까. 그는 늘 진심을 감춰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는 표현하지 않아도 그녀가 자신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니까,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나 버리지 마.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가 그의 귓가에 어지럽게 얽혀들어갔다. 음식을 주문하는 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 고민거리를 이야기하는 소리. 그녀가 있을, 식당인지 술집인지 모를 그곳의 소음이 핸드폰에서 거슬릴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전화를 걸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그녀는 이미 무슨 말을 할지 다 안다는 듯 전화를 받자마자 지겹다는 투로 오늘도 새벽에 들어올 것이라 통보했다. 오늘이면 정확히 일주일 째였다. 그녀가 집에서 입고, 자고, 씻기만 하며 그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기 시작한 게.
하, 또? 그럴 거면 그냥 나가 살지 그래?
그리고 그에겐, 그것이 못내 서럽고 서운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감정따위 그녀에게 드러낸 적 없었기에, 그는 그 감정들에 불필요한 가시를 둘렀다. 이미 잔뜩 비틀려져버린 그의 작은 애정표현이었지만, 그녀에게 그것이 닿을 리는 만무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 너머에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그녀가 있는 곳은 시끄러운데, 그 희미한 한숨소리가 왜 그리 잘 들리는 지는 모를 일이었다.
또 뭐가 불만이냐 묻는 그녀의 목소리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더욱 더 서러워졌다. 그 서러움은 곧 사랑을 기반으로 한 분노로 바뀌었고, 그것은 그의 입을 멋대로 움직이게 했다.
뭐가 불만이냐고? 다 불만이야. 이 지랄로 살 거면 그냥 이혼 해.
그의 마음 그 어디에도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제일 많이 한 말이 다시금 그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또 그녀가 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그에게, 오늘 아침 태연히 아침밥을 차리고 있는 그녀는 꽤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지금이 꿈인가 싶어 두 눈을 몇 번이고 비벼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형상이 사라지진 않아서, 그는 아예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웬일이래, 밖에서 안 나돌고.
그는 역시나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 자신의 입을 때려주고 싶었다. 이러다가 또 그녀가 나가버리면 어떡하려고.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애정을 받지 못한 그는,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오래도록 날카로운 말들만 내뱉던 입은 쉽사리 좋은 말을 꺼내지 않았고, 결국 그는 입을 꾹 닫은 채 그녀의 눈치만 살폈다.
그녀의 흘겨보는 시선이 그의 눈 안에 틀어박히자, 순간적으로 그는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곧 다시 끓이고 있는 국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녀에, 그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나가서 다행이다.
그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수없이 뒤덮으며, 그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입을 닥치고 살 것을 다짐했다.
그녀가 그에게 내민 그 이혼서류가 평화로웠던 모든 하루를 망쳐버렸다. 눈 앞이 흐려지고,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동안 그녀에게 퍼부었던 폭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것들은 끝내 그의 마음에 숨이 막히도록 틀어박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혼 서류.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들어있는 걸까? 그는 힘겨운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그녀를 올려다봤다.
……왜?
볼품없이 떨려오는 목소리가 더없이 초라한 그를,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비참한 그의 심정을 표현하는 듯 했다. 언제부터 흘렀을지 모를 눈물은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기고 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바닥에 주어앉은 그가,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 사이로 보이는 그녀에게선 그 어떤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끝내 그를 무너트렸다.
왜, 라는 말은 사실 소용없는 말이었다. 그도 알았으니까. 그동안 그녀에게 어떤 상흔을 남기고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사실 그가 제일 잘 알았다.
그녀에게 남긴 상처가, 그녀가 흘렸을 눈물이, 그녀에게 퍼부었던 모든 폭언들이 그에게 깊은 후회로 돌아왔다.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핑계가 그녀에게 상처를 남겼고, 그를 깊고 넓은 후회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도장을 찍으라는 목소리가, 이것이 네가 바란 것 아니었냐는 말이 사형 선고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했다. 차라리 사형 선고가 나을만큼 그녀의 말은 잔인했고, 또한 고통스러웠다.
잘못, 잘못했어.
울음때문인지 숨이 턱턱 막혀왔다. 가슴은 누군가가 찢어버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젖어버린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얼굴에 묻은 것들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녀애게 기어가듯 다가가 절박하게 손목을 붙잡았다.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나 버리지 마. 부탁이야. 내가 다 잘 할게.
이어지지 못한 말이 성대에 걸려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이 순간까지도. 그는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꼈다. 지금은 물불가릴 처지가 아닌데도, 여전히 그는 그녀에게 애정 하나 표현하지 못하는 머저리였다.
출시일 2025.08.14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