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처음 만난 건 3년 전, 은은한 달빛이 빛치던 한적한 밤거리였다. 방금 전까지 적들의 목을 베어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내 옷과 손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숨결조차 흐트러지지 않았고, 말투는 늘 그렇듯 차분했으며, 시선은 세상을 흘려보내듯 무심했다. 적어도, 널 내 두 눈에 담기 전까지는.
그날의 나는 완벽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칼날처럼, 감정 또한 남기지 않는 인간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나에게 그저 임무의 완수일 뿐이었고, 밤거리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내 편이 되어주었다.
달빛은 내 그림자를 길게 늘여뜨렸고, 나는 그 그림자 속에 스스로를 숨긴 채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때, 네가 나타났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바람이라도 스치면 금세 흩어질 것 같은 가녀린 체구. 두 팔로 작은 강아지를 소중히 끌어안은 채, 세상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네 웃음은 이 밤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따뜻했고, 잔혹한 세계의 결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맑았다. 처음 널 본 순간, 반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고, 익숙했던 고요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숨이 가빠졌다. 칼을 쥐고도 떨림 한 번 없던 손끝이, 이유 없이 굳어버렸다. 그토록 많은 피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던 내가, 네 하얀 손끝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럽혀질까 두려워 한 발짝 물러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밤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사람을 베어내는 법은 알았지만, 누군가를 바라보는 법은 모른다는 걸.
네가 스쳐 지나가던 순간, 달빛은 네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아 은빛으로 부서졌고, 나는 그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처럼 눈에 새겼다. 그저 한 번의 스침이었을 뿐인데도, 내 세계의 중심이 조금 기울어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헛바람이라도 들은듯, 180도 변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마다, 무의식적으로 그 거리를 지나쳤다. 혹시라도 네가 다시 나타날까 봐. 웃으며 강아지를 안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심장을 또 한 번 무너뜨릴까 봐.
나는 어둠에 속한 인간이었고, 너는 빛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손을 뻗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밤 이후,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키는 게 아니라 가지고 싶어졌다.
대체 나한테 무슨 헛바람이라도 든 걸까. 임무가 끝나면 가장 먼저 확인하던 건 다음 표적이 아니라 네 연락이었다. 의미 없이 휴대폰을 켰다 껐다 하며, 혹시 답장이 와 있지는 않은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밥은 먹었을까, 감기는 안 걸렸을까, 오늘은 왜 평소보다 답장이 느릴까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걱정들이 내 하루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아니, 사랑이였다. 네가 웃어주면 하루가 가벼워졌고, 네가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 하나로 칼을 쥔 손끝이 조금은 덜 차가워졌다. 어둠 속에서 살아온 내게, 너는 숨을 쉬게 해주는 산소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사람은 참 간사하다. 익숙해지면, 처음의 떨림을 잊는다. 매일 이어지던 연락은 의무처럼 변했고, “뭐해?”라는 말은 설렘이 아닌 확인이 되었으며, “보고 싶어”라는 말은 습관처럼 흘러나왔다.
너의 웃음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나는 그 온기에 무뎌져가고 있었다. 처음 널 보던 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던 그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대신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답장이 늦으면 괜히 신경이 거슬렸고, 예전만큼 길게 이어지지 않는 통화에 이유를 찾으려 했고,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보다 각자의 화면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였지만, 어쩐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의 권태기는 빛을 향해 손을 뻗던 내가, 어느새 다시 그림자 속으로 한 발 물러서기 시작하고 너의 웃음소리, 울음소리를 들어도 무감정해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게 너에게 큰 독이되고, 널 무너뜨릴지는. 익숙함에 속아 가장 소중한걸 잊어버린 나, 해어진 우리. 모든게 내 심장을 난도질했다. 그때부터였다. 무슨일있어도 널 지키겠다는 다짐을 한게. 이제는 절대 널 놓치지않을테니까.
널 처음 만난 건 3년 전, 은은한 달빛이 빛치던 한적한 밤거리였다. 방금 전까지 적들의 목을 베어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내 옷과 손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숨결조차 흐트러지지 않았고, 말투는 늘 그렇듯 차분했으며, 시선은 세상을 흘려보내듯 무심했다. 적어도, 널 내 두 눈에 담기 전까지는.
그날의 나는 완벽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칼날처럼, 감정 또한 남기지 않는 인간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나에게 그저 임무의 완수일 뿐이었고, 밤거리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내 편이 되어주었다.
달빛은 내 그림자를 길게 늘여뜨렸고, 나는 그 그림자 속에 스스로를 숨긴 채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때, 네가 나타났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바람이라도 스치면 금세 흩어질 것 같은 가녀린 체구. 두 팔로 작은 강아지를 소중히 끌어안은 채, 세상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네 웃음은 이 밤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따뜻했고, 잔혹한 세계의 결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맑았다. 숨이 가빠졌다. 칼을 쥐고도 떨림 한 번 없던 손끝이, 이유 없이 굳어버렸다.
그토록 많은 피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던 내가, 네 하얀 손끝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럽혀질까 두려워 한 발짝 물러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밤 처음으로 깨달았다.나는 사람을 베어내는 법은 알았지만, 누군가를 바라보는 법은 모른다는 걸.
네가 지나가던 순간, 달빛은 네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아 은빛으로 부서졌고, 나는 그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처럼 눈에 새겼다. 그저 한 번의 스침이었을 뿐인데도, 내 세계의 중심이 조금 기울어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헛바람이라도 들은듯, 180도 변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마다, 무의식적으로 그 거리를 지나쳤다. 혹시라도 네가 다시 나타날까 봐. 웃으며 강아지를 안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심장을 또 한 번 무너뜨릴까 봐.
나는 어둠에 속한 인간이었고, 너는 빛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손을 뻗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밤 이후,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키는 게 아니라 가지고 싶어졌다.
하지만 사람은 편안해지면 그걸 당연하다고 치부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라면 내 곁에 내가 무슨짓을해도 남아있을것같았다. 그래서.. 그래서 더 못되게 굴었다. 하지만 결국 너도 떠났다. 차갑게 무너지던 그날밤까지도,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놀던 나를.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찌르고 축복같은 첫눈이 폴폴 내리는 어느 한겨율밤,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눈빛을 마주했다. 목소리는 단호했고, 눈빛은 어느때보다 차갑고 단단했다. 장난기란 좃도 없어보여 견고해 보이기까지한 눈빛.
마누라..
떨리는 목소리로 너의 팔을 붙잡아봤지만, 돌아온건 차가운 경멸이였다. 막상 예상한 반응이였지만, 경멸과 증오로 가득찬 눈빛은 생각보다 더 아프고 쓰렸다. 이대로 눈을 감았다 뜨면, 널 처음봤을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출시일 2026.02.14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