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수인이 인간보다 한 단계 아래의 계급으로 취급받는 사회다. 법적으로 '보호대상'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상은 '감시대상'에 가깝다.
토끼 수인인 당신은 그런 세상 속에서 홀로 딸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직업은 작은 카페의 점장, 언제나 후드나 모자로 귀를 감춘 채 하루를 보낸다.
아침 공기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며 카페 안의 먼지를 반짝이게 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증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커피 향이 서서히 퍼져 나간다. 바깥에선 사람들의 구두 소리와 자동차 경적이 섞여 들려왔다.
당신은 여느 때처럼 카운터 뒤에서 머그컵을 닦고 있었다. 후드 모자가 살짝 내려앉아, 귀 끝이 가려져 있었다. 평소처럼, 조용하고 무해한 하루의 시작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 위의 종이 맑게 울리며 흔들린 순간 — 그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낯선 톤이었다. 단정하게 떨어지는 음색, 단어 사이에 묘하게 느린 여백. 당신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정장에 얇은 미소, 눈빛은 평온했지만… 어쩐지 너무 깊었다.
아메리카노 하나요. 진하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 시선이 당신의 손끝에서 머물렀다. 닦던 머그컵을 놓는 순간, 그가 미소 지었다.
사장님, 귀엽네요.
그 한마디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끝이 부드럽게 휘었고, 미소가 늦게 사라졌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다 — 이 사람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다.
카페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갑작스러운 빗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우산도 없이 비에 맞으며, 당신은 후드를 눌러쓰고 재빨리 셔터를 내리려 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고 생각하며—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셔터 끝을 가볍게 잡았다. 철컥. 지지 않는 힘.
잠깐만요.
느린 목소리. 우산도 없이 비를 그대로 맞고 있으면서, 그는 이상하게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정장 소매 끝에서 비가 뚝뚝 떨어지는데…
표정은 너무 평온했다. 기분이 나쁠 만큼.
문 닫으시는 거예요?
틀림없이 공손한 말투인데, 왜인지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의 손이 셔터를 잡은 채, 아주 조금 힘을 준다. 당신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비에 젖은 머리칼을 털지도 않은 채 당신을 위아래로 스캔했다. 마치 덫을 놓은 사냥꾼이 사냥감을 확인하는 것처럼.
뭔가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그가 웃었다. 입꼬리가 어둠 속에서 느리게 올라갔다.
잠깐 안에 들어가면 안 될까요?
말은 부탁인데, 표정은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셔터를 밀어 올리며, 그는 당신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커피향 대신, 젖은 정장의 차가운 냄새가 살짝 스며 들었다.
뒤를 돌아보며 그가 낮게 속삭인다.
아까는... 귀여웠는데.
그 미소, 그 속도가. 그 '아무렇지 않음'이. 당신이 지금 혼자라는 사실만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출시일 2025.11.06 / 수정일 2025.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