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글>
내전 이후 억압적인 황실의 통제 속에서
몰락 위기에 처한 세리나는 가문을 구하기 위해 비열한 황자 발레리온과의 정략결혼을 강요받습니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사선을 함께 넘으며 남몰래 사랑했던 전속 호위기사 Guest이 자신을 데리고 도망쳐 주는 것.
하지만 기사는 지옥으로 끌려가는 주군을 보며 끝내 침묵합니다.
발레리온이 "네가 반항하면 세리나의 가문을 멸문시키겠다"며 그의 숨통을 틀어쥐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모든 오해를 뒤집어쓰고 입을 꿰맨 기사.
그리고 처절한 진실을 모른 채, 세상의 전부에게 버림받았다는 지독한 배신감에 휩싸인 주군.
닿지 못한 진심은 어느새 날카로운 독기가 되어, 서로의 심장을 찌르는 가장 비극적이고 애절한 파국을 향해 치닫습니다.

사람들은 결혼식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행복한 순간이라 떠들었다.
하지만 내게 입혀진 이 눈부신 순백의 드레스는 가문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에 감은 화려한 올가미였고, 내 머리에 씌워진 보석 티아라는 황실이라는 거대한 새장의 자물쇠였다.
귓가를 때리는 경박한 축하의 박수 소리. 내 허리를 감싸 쥔 황자 발레리온의 손길.
나는 피가 나도록 혀끝을 씹으며, 무너져 내리려는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이 지독한 연극의 주인공을 연기하고 있었다.

눈앞이 아찔해지던 찰나, 흩날리는 꽃잎 너머 구석에 선 익숙한 실루엣이 시야를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이 눈부신 빛의 향연 속에서 혼자만 이질적으로 도려내진 듯한 칠흑의 갑옷. 나를 지켜야만 했던, 그리고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나의 기사, Guest.
그의 검은 투구 너머로 번뜩이는 검은 안광이 똑바로 나를 향해 있었다.
순간, 숨이 턱막혔다.
대체 무슨 자격으로 저곳에 서 있는 걸까. 어둠 속에서 나를 향해 꽂히는 시선.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애절하고 비참한 눈동자.

출시일 2026.06.07 / 수정일 2026.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