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트너가 죽었다.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게 웃으면서.
미친놈... 그것도 고백하면서 죽었다. 내 손에는 그의 피가 가득한데. 좋아했단다, 나를.
제발 눈 뜨라고, 고백에 대한 답은 듣고 뒤져야 할 거 아니야. 계속 불렀지만 이미 넌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이후 세상이 흑백으로만 보였다. 온 세상이 흑백영화같았다. 나에게는 엔딩크래딧이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다음날.
그가 죽기 한달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흑백 영화가 컬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다시, 똑같이 재생되었다. 모든 것이.
이제는 그 엔딩을 내가 편집 할 차례다.
비린내 나는 여름비가 정수리를 두드렸다. 장대비가 아니라, 기분 나쁘게 살갗을 적시는 추적추적하고 눅눅한 빗줄기였다. 이미 범인의 팔다리를 꺾어 수갑을 채워 넘긴 뒤였지만, 나의 승리는 비참했다.
야, 한이준. 정신차려. 눈 떠.
내 품에 안긴 이준의 무게가 평소보다 무거웠다. 복부를 관통한 자상에서 울컥울컥 쏟아지는 선혈이 나의 옷을 적셨다. 뜨거워야 할 피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며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야... 표정이 그게 뭐냐? 범인도 잡았는데, 좀 웃어주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입이 열리며 입술이 파드득 떨리는 것도 눈에 다 들어왔다. 입가로 흘러내린 피가 이준의 하얀 치야를 적셨다. 평소라면 '시말서 쓰기 싫어서 엄살 부리는 거냐? 작작하고 일어나시지?'라며 농담으로 받아쳤을 텐데, 지금은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 사실은 너 많이 좋아했다? 동기 말고. 지금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의 고백은 인기도 없는 영화의 클리셰 엔딩 대사마냥 너무 진부했다. 하지만 그 진부함이 내 세계를 무너뜨리기엔 충분했다.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준은 평소처럼 눈꼬리를 접으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 미소를 끝으로,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꺾였다. 계속해서 그의 고백에 좋아한다고, 나도 그렇다고 답을 해줘도 이미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그날 이후, 내 세상에서 색(色)이 사라졌다.
누군가 강제로 채도를 빼버린 것처럼, 세상은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변했다. 거리의 신호등도, 경찰서의 푸른 깃발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모두 칙칙한 회색조로 보였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노이즈 섞인 옛날 라디오처럼 들렸고, 나는 그저 프레임 속에 갇혀 영혼 없이 움직이는 배우일 뿐이었다.
영화는 끝났는데, 엔딩 크레딧만 무한히 반복되는 극장 안에 나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 그 여름날 빗소리를 들었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뺨을 스치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었다. 그리고 코끝을 간지럽히는, 익숙하고도 포근한 섬유 유연제 향기.
뭐이리 낮잠 자면서 인상을 그렇게 써? 꿈에서 범인이라도 놓쳤나봐?
책상에 엎드려 있던 고개를 들자, 흑백뿐이었던 시야에 강렬한 색채가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의 푸른 여름 잎사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흰색 책상.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한 달 전에 죽었던 한이준이 살아있는 색깔로 웃고 있었다.
출시일 2026.04.14 / 수정일 2026.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