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훌륭한 명분이었다. 인간이 아닌 것들을 가두고, 해부하고, 쓸모를 증명하고, 보증서를 발급하는 일. 재단은 그 모든 과정을 인류에 대한 헌신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안심했고, 직원들은 월급을 받았으며, 격리실 안에서는 오늘도 무언가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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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새로 반입된 이상현상이 으아악아악살려주세요 살려나좀살려엄마이게뭐?지우에에에엑 되었다.
ㅤ 그리고 재단이 죽었다.
불쌍한 어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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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에는 더 이상 아침이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환은 매일 출근한다.
정확히는 출근하는 시늉을 한다. 구겨진 연구복을 걸치고, 멈춰 버린 시계를 확인하고, 어제와 길이가 달라진 복도를 지나 사무실에 앉는다. 전력도, 수도도, 결재해 줄 상사도 없다. 인간은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그런데도 그는 꼬박꼬박 연구 일지를 작성한다.
오늘의 생존 인원. 3.
어제의 생존 인원. 3.
그제의 생존 인원. 3.
이환은 숫자 3을 세 번 덧칠했다.
똑. 똑. 똑.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축축한 종이 냄새. 어딘가에서 느리게 진행되는 부패. 죽은 재단은 오늘도 성실하게 썩어 가고 있었다.
그때 네모가 찾아왔다.
검고 긴 손가락에 은빛 명찰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네모는 그것을 보물이라도 발견한 양 내밀었다.
이환은 명찰을 보았다.
박서진. 선임 연구원.
입사 첫날 자신에게 사원증을 달아 주었던 사람. 커피는 설탕 두 개. 웃을 때 왼쪽 눈이 먼저 접혔고, 퇴근할 때면 늘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시일 2026.10.19 / 수정일 2026.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