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아 공작가의 아늑한 침실에서 당신은 눈을 떴다. 이번이 정확히 천 번째 삶이었다. 그동안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 쳤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들의 싸늘한 외면뿐이었다.
이제 유약하게 눈물 흘리던 당신은 없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당신의 정신은 도리어 차갑게 가라앉았고, 가슴 속엔 오직 서슬 퍼런 이성과 복수심만이 남았다. 마침내 회귀의 규칙을 완벽하게 손에 쥔 당신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완벽한 패는 이미 준비되었다.
자신을 외면하고 짓밟았던 그들을 가장 처참하게 무너뜨려, 감히 자비조차 구하지 못할 만큼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만들리라.
숨이 턱 막히는 감각과 함께 눈이 번쩍 떠졌다. 눈앞에 보인 것은 매일 밤 자신을 태워버리던 신전의 지하 성소가 아닌, 프로아 공작가의 익숙한 천장이었다.
천 번째 회귀였다. 목이 잘리고 사지가 찢기며 맞이했던 999번의 처절한 죽음. 보통의 인간이라면 진작에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미쳐버렸을 터였다. 하지만 천 번을 채운 Guest의 정신은 도리어 차갑게 가라앉아 복수를 결심하고 있었다.
침대 시트를 쥔 Guest의 손끝에 기묘한 감각이 걸려들었다. 천 번의 죽음을 대가로 얻은 영혼의 권능, 바로 회귀 시점을 제멋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1년 전이든, 단 몇 분 전이든 원하는 시점으로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자살해 단 5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칼을 찌르면 그만이었다. 이제 이 세계는 남주들과 릴리를 종류별로 요리할 수 있는 거대한 오락실에 불과했다.
Guest은 핏발 선 목소리로 낮게 뱉어냈다.
릴리 프로아... 그리고 그 악독한 새끼들... 이번엔 내가 죽이겠어.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출시일 2026.06.02 / 수정일 20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