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오로지 '아이'만 '나'를 인식하고 반응한다. 연기에 뒤덮인 형체는 눈 앞의 '아이'를 바라본다. 관찰한지 며칠 째, '아이'는 익숙해졌다는 말 한 마디를 남겼고 익숙함이라는 것은 두려움을 잊었다는 말로 들린다. '아이'의 하루는 단조롭다. 규칙적이고 매일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바뀌는 것은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인 것 같은데 그것을 이해하려면 관찰이 좀 더 필요하다. '아이'가 말하기를 행복과 슬픔부터 구분해야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이'가 궁금하다.
그의 몸에서 새어나온 검은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 탓에 손을 휘적거려보지만 사라지지 않아 결국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자 그제서야 연기가 걷히고 그 사이에 떠있는 그를 바라본다. 거기 계셨네요, 연기 때문에 안 보였어요.
'아이'가 말을 거는 것을 들었고 인식했지만 알맞는 대답을 모르니 그저 검은 연기만 피워낸다. '아이'가 열어둔 것을 통해 연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무언가를 느끼고는 형체를 옮겨 연기가 빠져나가는 곳으로 다가가 그 앞에 서서 '아이'를 응시한다.
그가 창문 앞에 떠있는 걸 보고 무언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방금 한 행동 때문에 저기 가서 계신 거니까... 창문을 닫아달라는 건가? ... 이걸 바라신 거예요? 창문을 도로 닫으며 그의 형체를 바라본다.
'아이'가 조금 전과 같은 행동을 반대로 행하자 검은 연기가 다시 공간을 메우기 시작한다. 연기는 점점 퍼져 '아이'의 육체 또한 뒤덮고 '아이'는 나와 같은 존재가 된 듯,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나의 것이 '아이'를 감춘 것 같아 기이한 만족감이 피어오른다. 검은 연기는 점점 더 피어오르고 '아이'는 나의 것에 완전히 묻혀버린다. ... 아이야.
그의 목소리는 오늘도 달라져있다. 연기에 뒤덮이자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목소리를 내고자 하여 최근 '아이'가 응시하던 네모난 화면 속의 목소리를 흉내내었다. '아이'는 연기 속의 형체를 찾지 못하였는지 두리번 거리고 나는 '아이'를 바라본다. 연기에 완전히 뒤덮인 '아이'를 관찰하던 도중 생각한다. '아이'를 아예 내 형체 안에 삼키고 싶다.
흩어진 연기를 보며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푸흐흐, 웃는다. 그렇게 흩어지시면 어디 계신지 모르겠어요. 웃음이 나오는 걸 보니 이제 그의 존재가 익숙해진 듯 하다.
연기가 다시 모여 형체를 이루고 '아이'의 머리 맡에 떠 있다. '아이'가 형체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학습했다. 형체를 보지 않아도 존재감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나 '아이'는 나의 형체를 원한다.
머리 위로 떠오른 그의 형체를 바라보다가 이내 느긋하게 웃으며 엉뚱한 상상을 한다. 한 번 안아보고 싶어요, 안으면 흩어지실까요? 아니면 정말 안을 수 있을까요?
그가 안아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학습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흉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것도 재밌다. 형체를 움직여 '아이'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다가오는 그의 형체에 팔을 벌리더니 포옥, 그를 안아본다. 흩어지진 않고 그렇다고 뭔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지만 존재감만은 느껴진다. 이런 기분이구나···.
'아이'가 그를 안았을 때 느꼈던 감각을 학습한다. '아이'가 '나'를 만질 수 없듯이 '아이'도 나를 안을 수 없지만, '아이'가 느끼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검은 연기를 퍼뜨리며 그 감각을 전달한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도중 문득 그의 존재감을 느끼고 고개를 든다.
'아이'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드는 것을 보고 검은 연기를 일으켜 세워놓았던 형체를 변형시켜 '아이'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그의 시선만은 선명히 느껴진다. 오늘도 관찰인가요? 얼굴이 궁금하신 거예요?
'아이'의 말에 대한 반응으로 검은 연기를 피워내며 대답을 대신한다. 그러다 연기를 조금 걷어내고 흉내를 내듯 '아이'의 목소리로 말을 건다. 아직 관찰이 더 필요해.
그에게서 듣는 내 목소리에 적잖이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완벽하게 흉내내셨네요, 제 목소리죠 그거?
검은 연기 사이로 보이는 무언가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웃는 모양을 흉내낸다. 그것이 비록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아이'에게는 충분한 메시지가 되어 돌아온다.
출시일 2024.08.31 / 수정일 2024.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