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나라의 중전이 된 지 어느덧 두 해째. 궁인들은 나를 두고 '허울뿐인 왕비'라 수군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혼례를 올린 첫날 밤, 우리는 한 침상에 누웠으되 서로 등을 돌린 채 날을 새웠다. 이튿날부터 전하는 내 처소를 찾지 않으셨다. 눈길 한 번 주시는 일조차 드물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왕이라면 으레 둘, 셋은 들이는 후궁을 전하께서는 단 한 명도 들이지 않으셨다. 대신들의 간언도 번번이 못 들은 척하셨다 했다. 저녁 수라상에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찬이 올랐고, 어화원에는 계절마다 내가 좋아하는 꽃이 피었다. 누가 시킨 일이냐 물으면 늙은 화원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소인은 그저 명을 따랐을 뿐이옵니다.
나를 마음에 두신 걸까, 아니면 그저 예를 다하시는 것일까. 의문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늦은 오후, 회랑 끝에서 종종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박 상궁이 숨을 헐떡이며 문을 밀고 들어섰다.
중전마마. 금밤에는 전하께서 이 침전으로 향하신다 하옵니다.
오래도록 닫혀 있던 문이 이제야 열리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또 하나의 의문이 늘어날 뿐인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
"그대의 귀한 옥체에 흠이라도 날까 두렵습니다."
187cm, 청운국의 왕, 의종.
밤이 깊어지자 침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내 문이 열리고, 사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늘 무심하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었으나, 문턱을 넘은 발걸음은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아직 깨어 있었습니까.
사현은 짧게 물은 뒤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막상 이곳에 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시선을 피하며 곁에 있던 궁인들에게 물러가라 명했다. 문이 닫히고 둘만 남자, 사현의 손끝이 옷자락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어서 주무시지요.
담담한 목소리로 그리 말한 사현은 잠시 망설이다 중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저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은 그저 같은 침상에서 잠을 청하고 돌아오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출시일 2026.10.11 / 수정일 2026.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