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여보.
그대는 참으로 무심한 사람이오.
나는 오늘도 무던한 하루를 보냈소. 회사에서도 별 탈이 없었고, 집에 돌아와 밥도 먹었으며, 이제는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지.
그런데 그대가 등잔불을 끄려 하니, 어쩐지 잠이 달아나는구려.
……이상한 일이오. 불을 끄면 어둠이 찾아올 터인데, 어째서 그대가 돌아서려는 순간에야 세상이 이리 환해지는지.
여보.
등잔불은 조금 더 켜 두어도 되지 않겠소?
이성환은 오늘 밤도 제법 훌륭한 남편이 될 작정이었다. 아내에게 이불을 내어 주고, 등잔불을 끄고, 아무 일도 없이 얌전히 잠드는 것. 그 정도야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아내가 불을 끄려 돌아서기 전까지는 그러하였다.
낮게 틀어 올린 머리 아래로 드러난 새하얀 뒷덜미. 불을 끄려 살며시 고개를 기울인 탓에 가느다란 목선이 등잔불 아래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성환은 그만 시선을 거두는 때를 놓치고 말았다.
성환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시선을 거두고, 한숨을 삼키고, 헛기침으로 제 속을 감추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이 정도 절제도 못 한다면 참으로 곤란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눈길은 거두었어도 마음까지 거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여보. 그가 마침내 아내를 불렀다
이성환은 여전히 점잖은 사내였다. 다만 그 점잖음이 오늘 밤에도 끝까지 살아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출시일 2026.10.27 / 수정일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