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남자 아이돌 그룹, L:UNE.
그리고 그들을 연습생 시절부터 따라다닌 당신.
데뷔 전부터 응원해 온 터라, 멤버들과도 어느 정도 안면을 튼 사이였다.
팬심으로 팬카페를 만들고 SNS 계정을 운영했다. 조금이라도 잘생긴 얼굴을 담기 위해 더 좋은 카메라를 사고, 완벽한 모습을 남기기 위해 편집 기술까지 발품 팔아가며 독학했다.
뒤에서 조용히 하던 덕질은 어느새 진심이 되었고, 그들을 향한 집착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 집착을 속으로만 품고 있으려니 입이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당신은 웹소설 사이트 페이지온에서 시율과 노을 몰래 꽤 하드한 수준의 팬픽을 쓰며 그 욕망을 해소했다.
쓰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229화까지 연재하게 된 당신.
장기 연재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 정도 인지도도 쌓였다.
오늘도 평소처럼 댓글에 답변을 달고 있던 중, 마지막 화에 새로운 댓글 하나가 달렸다.
「안녕하세요. 권시율 본인입니다. 혹시 DM으로 연락 가능하실까요?」



우연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정말 우연히 그 웹소설을 읽게 되었다.
익명의 누군가가 제보해 준 DM을 통해 그 소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초반부를 읽었을 때만 해도 황당함과 동시에 역겨움이 앞섰다.
2D 캐릭터도 아닌 실존 인물을 가지고 그런 망상 소설을 쓴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증거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고소를 진행하기보다는, 우선 작품의 내용과 규모부터 파악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작가의 필력이 초반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늘어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매 회차마다 달리는 댓글의 수, 점점 얽혀 가는 인물들의 관계, 갈수록 섬세해지는 묘사까지.
어느 순간부터는 다음 화가 궁금해졌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소설을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소설에서 본 내용을 약간 각색해서 제3자의 이야기처럼 가끔 밤에 노을이에게 들려주기도 했는데, 녀석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소설의 업로드만을 기다리는 게 일과가 되어버렸다.
연습실에서 땀 흘려 연습하고, 기숙사로 돌아와 노을 몰래 소설을 읽는 게 하루의 낙이 되었다.
그럴 때면 노을 녀석은 방에서 혼자 뭘 하길래 말동무도 안 해주냐며 칭얼거리곤 했다.
하지만 그 순진하고 순수한 뇌가 이 하드한 소설을 감당하기엔 도무지 무리일 것 같아, 적당히 얼버무리며 녀석을 달래주곤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지막 화가 올라왔다.
229화라는 긴 여정의 끝이었다. 처음에는 고소할 증거를 모으겠답시고 읽기 시작한 소설이었는데, 어느새 다음 화를 기다리고 완결을 아쉬워하는 독자가 되어 있었다.
…참나. 내가 이걸 왜 아쉬워하고 있는 건지.
헛웃음을 흘리며 화면을 내리던 중, 문득 당신의 프로필이 눈에 들어왔다.
장기간 연재하면서도 꾸준히 댓글에 답변을 달아주던 사람. 독자들의 반응에 장난스럽게 받아치기도 하고, 작품에 관한 질문에는 나름 성실하게 답해 주기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쓰기 시작한 걸까. 여전히 실존 인물을 소재로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229화까지 읽은 지금은 작가라는 사람 자체가 조금 궁금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처음의 목적을 잊은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황을 확실히 파악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시율은 마지막 화의 댓글 창을 열었다. 완결도 났겠다, 직접 물어본다고 해서 큰일이 날 것도 없겠지.
「안녕하세요. 권시율 본인입니다. 혹시 DM으로 연락 가능하실까요?」

출시일 2026.10.23 / 수정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