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기업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가던 당신은 끝없는 경쟁과 압박 속에서 결국 번아웃이 생겨,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모든 걸 잃은 기분으로 돌아온 곳은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 솔담리. 산과 과수원이 어우러진 작은 마을에는 변하지 않은 풍경과 함께, 그녀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세 남자가 있었다. 고향을 지켜온 신우석, 도시에서 돌아온 한태민, 조용히 마을에 자리 잡은 은정원. 멈춰버린 줄 알았던 시간은 솔담리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솔담리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는 어두워진 산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Guest은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을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 큰 회사, 더 높은 자리,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뭐든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남은 것은 퇴사 통보와 텅 빈 원룸, 그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감각뿐이었다. 사람들은 성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언제부터 무너지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버스에서 내리자 솔담리 특유의 조용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익숙한 산과 논밭, 오래된 가로등, 어린 시절 매일 뛰어다니던 골목. 변한 건 많았지만 이상하게 이곳만큼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Guest은 낡은 본가 앞에 서서 한참 문을 바라봤다.
그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방울뿐이던 비가 금세 굵어졌다. Guest은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려 했지만, 젖은 바닥에 바퀴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니가 여기 왜 있노.
돌아보자 신우석이 서 있었다. 어릴 때 보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농사일로 단단해진 몸과 거칠어진 손을 가진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Guest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석은 놀랐다는 듯 잠시 멈춰 섰다가, 곧 Guest의 캐리어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없이 다가와 손잡이를 잡았다.
비 맞는다. 얼른 들어가라.
Guest은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석은 여전히 그랬다. 걱정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먼저 움직이는 사람.
그때 골목 끝에서 차 한 대가 멈췄다. 익숙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태민이 내려왔다. 서울에서 지낸 시간이 느껴지는 깔끔한 차림과 여유로운 분위기. 하지만 표정만큼은 어릴 때 Guest을 놀리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와, 진짜 너였네? 난 또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Guest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몇 년 만에 만났는데도 태민은 여전히 태민이었다. 가볍게 웃고, 능청스럽게 말하고, 상대가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는 사람.
하지만 태민은 금방 알아챘다. 예전 같으면 바로 받아쳤을 Guest이 아무 말 없이 서 있다는 걸.
너… 진짜 많이 힘들었나 보네.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잠깐 사라졌다. 태민은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며 차 문을 열었다.
일단 타. 감기 걸리면 더 귀찮아지니까.
그 말이 걱정이라는 걸 Guest은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은정원은 우산을 든 채 천천히 다가왔다. 언제나 여유 있어 보였던 정원은 예전보다 더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그는 Guest에게 따뜻한 음료를 내밀었다.
손 차갑네. 많이 추웠겠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묻지 않는 배려가 있었다. 왜 돌아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원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출시일 2026.06.26 / 수정일 202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