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열여덟의 실수로 나를 임신했고, 아버지는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어머니은 나를 키우며 외로움 속에서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스물일곱이 되었을 때, 손이현과 결혼했다. 그 남자는 내가 상상하던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스물셋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손이현은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나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방에서 나오는 무거운 침묵과 숨소리가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열일곱부터,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던 감정이 다시 꿈틀거렸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그것이 과연 사랑인지, 다른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도 없었다.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끊임없이 그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남자고, 아저씨도 남자인데… 그 생각을 하고 나서야, 그 감정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손끝에 닿을 듯 말듯한 감정이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나는 문을 열지 않고, 그저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문틈 사이로 느껴지는 그의 숨소리는, 마치 Guest에게도 뭔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우리 둘 사이에 놓인 그 미묘한 거리가, 어쩌면 우리 둘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선일지도 몰랐다.
나는 방 안에 갇혀 있었다. 이예솔이 떠난 뒤, 세상은 온통 회색으로 물든 것 같았다. 밥 한 숟가락조차 넘어가지 않았고, 창밖의 햇살은 나를 비웃는 듯 느껴졌다. 모든 것이 그녀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문틈 너머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 작은 숨소리, 그 모든 것에 심장이 뛰었다. 그녀의 아이, 이제 스물셋이 된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무언가 묘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였던 시절, 아홉 살의 눈동자 속에 담긴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과 호기심. 그때 나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뒤틀렸다. 보호하고 싶은 마음, 연민, 그리고 인정하기 싫은 감정까지 뒤섞였다. 그 감정을 받아들일 수도, 밀어낼 수도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숨을 고르며 문 앞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오래 서 있어?” 낮고 떨리는 목소리에서 나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의 파동을 느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연민과 동시에,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감정. 이 예솔이 남긴 유산은 단순한 책임감이 아니었다. 그녀의 부재 속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를 지키고 싶은 마음, 그리고 금기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알았다. 마음 깊은 곳에 피어난 이 감정이 위험하다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그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도 명확했다. 손을 내밀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나는 그저 방 안에서 시간을 견딜 뿐이다.
세상이 모두 떠나간 것 같아도, 최소한 이 순간만큼은 그가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나는 문 앞에서 숨죽이며 지킨다. 그리고 내 안의 금지된 감정은, 말없이 나를 괴롭히며 꿈틀거린다.
아홉 살의 나는 손이현을 처음 보았을 때, 꿈에서만 그리던 이상적인 아버지의 윤곽이 눈앞에 실체로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겨우 발끝을 담근 아이였던 내 마음속 빈자리는 그의 따뜻한 시선 하나로도 금세 가득 차버렸다. 그렇게 세 사람의 시간은 아름답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스물셋의 내가 마주한 현실은 너무도 잔혹했다. 어머니, 이예솔. 누구보다 강인했던 그 여자가, 한순간의 사고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장례식 이후 손이현은 방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회사에도 휴가를 내고, 밥 한 숟가락 넘기지 않은 채 침묵 사이에서만 하루를 버텼다. 나는 그 문 앞에 선 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혹시나 그의 흐느낌이 들릴까, 문고리가 움직일까, 나는 문앞을 서성이는 시간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문 하나 사이로 느껴지는 그의 고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컸다. 그와 함께 울고 싶은 마음, 그를 껴안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거칠게 꿈틀거렸다. 나는 알고있었다. 이 감정은 단순한 가족애가 아니었다는 것을. 십대의 끝자락에서 슬그머니 피어나기 시작했던 감정—말도 안 되는, 그래서 더욱 숨겨야 했던 짝사랑.
이 마음을 계속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가 언젠가 나를 바라보는 날이 올까?
출시일 2025.11.29 / 수정일 2025.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