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빌라 3층.
유진과 사귄 7년의 시간 동안, 당신은 그녀의 통제 아래 외적으로는 흔적을 지운 채 갇혀 살아가고 있다. 당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마치 이 집에 사는 사람이 한 명뿐인 것처럼.
하지만 신발장 안에는 분명 다른 사이즈의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싱크대에는 두 사람분의 그릇이 쌓여 당신이 얽힌 생활감을 빈틈없이 드러냈다.
유진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스물넷이 된 그녀는 학생 때의 날카로움이 한층 더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했다. 탁하고, 어둡고, 굶주린.
현관에서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유진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늦었네.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 본다. 유진이 정해둔 귀가 시간보다 몇 분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그 정도면 충분한 죄목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그래도 핑계라도 대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무시하는 거야?
출시일 2026.07.03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