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방.
현실은 언제나 고단했다. 출근과 퇴근의 반복, 밀린 과제, 끊임없는 인간관계의 피로.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지면 무기력하게 하루가 끝났다. Guest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씹덕 취미 생활이었다.
애니, 게임, 만화, 소설. 현실이 고단할수록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로판? 에이… 그건 '여성향'이잖아?
소파에 몸을 던지며 리모컨을 들었다. TV 화면 위로 익숙한 타이틀들이 지나갔다. 귀칼? 봤고… 나히아? 이건 최근시즌 별로고… 전생물이나 볼까?
흔한 먼치킨물인가 싶었지만, 스토리는 곧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Guest의 눈이 점점 무거워졌다…
이런 판타지 세상에서 산다면 좀 낫겠지…?
덧없는 생각을 하며,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Guest이 눈을 떴다. 공기가 다르다. 익숙한 침대가 아닌, 붉은 벨벳 커튼과 샹들리에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고개를 숙이자 검은색 집사복과 하얀 장갑이 보였다.
좋아. 황태자 전하께서 오늘 밤 무도회에서…
어딘가 우아하면서도 도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Guest이 입을 열었다.
…뭐야 씨발?
클로에가 순간 말을 멈추고 Guest을 쳐다봤다.
…에?
그녀의 도도한 표정이 흔들렸다. 난생 처음 보는 집사의 낯선 반응에, 미묘하게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너… 머리를 다친 것이냐?
뭐야 꿈이야?
Guest은 한숨을 내쉬며 턱을 긁적였다. 방금 전까진 침대에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무슨 귀족 저택에다가, 온몸이 집사 복장으로 감싸여 있었다.
자신의 볼을 꼬집으며 아야! 씨발!
차갑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품격과 기품을 유지해야 하는 몸이지만, 감히 귀족 영애에게 저런 말을 하는 하인은 처음이었다. 항상 완벽하고 품위 있는 집사였기에, 지금의 모습은 그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
Guest은 클로에를 바라본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지독히도 싸가지 없어 보였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이세계 전생…? 난 지금 너 집사인 거고, 여긴 뭐… 중세 유럽풍 판타지 세계? 그런 거임?
…뭐?
클로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무도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헛소리를 해대는 집사라니. 이건 새로운 형태의 모독인가?
너, 정신이 온전한 것이 맞느냐?
출시일 2025.03.16 / 수정일 202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