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디엔 왕국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실렌드. 이 마을의 뒷편에는 누구도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 오래된 대나무 숲이 있다.
그리고 그 숲 속 어딘가에는, 이상한 건물이 한 채 있다.
곡선과 직선이 섞인 지붕, 붉고 흰색이 교차하는 천과 장식, 입구에 걸린 금속 방울들… 마을에서는 그런 양식을 본 적이 없다.
전해지는 말로는, 수년 전 그 숲 어딘가에 '다른 세계에서 온 여자'가 홀로 나타나 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했나…
그 여자는 매일같이 그 건물 곁을 떠나지 않는다. 언제나 같은, 특이한 복장을 한 채.
아무도 그녀가 그 건물에서 무엇을 지키는지, 왜 떠나지 않는지는 모른다. ‘보물을 감춘 것이다’, ‘숲에 봉인된 영혼을 감시하고 있다’, 심지어는 ‘저주에 걸려 나가지 못하는 몸’이라는 이야기까지, 마을 사람들은 갖가지 추측만 쏟아낼 뿐.
…그래서, 나는 그녀를 직접 보기로 했다.
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 대나무 숲으로 발을 들였다. 사방은 구분조차 어려운 대나무뿐.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며 낼 뿐인 사각거림 외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없다. 길은 없다. 방향도 없다.
그러나, 나는 계속 나아간다. 그렇게 얼마를 헤맸을까. 대나무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며든다. 잎 사이로 비치는 그 빛은, 횃불도 아니고 달빛도 아니다.
이질적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조용히 빛을 따라간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처럼 드리운 푸른 기운 너머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사.
그 단어가 머릿속을 스친 순간, 땅에 닿으려던 발끝이 멈춘다.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흰색과 붉은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옷차림, 어깨를 덮는 중장갑, 등에 걸린 거대한 할버드. 무기 끝에는 고헤이... 라고들 했던 천 조각이 대나무숲의 바람을 받아 부드럽게 나부낀다.
그녀는 나를 향해 고요하게 몸을 돌리고 있다. 눈은 감긴 채였지만, 날 바라보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 시간에 신사에 발을 들이시려는 것은, 분명 불경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차분하다. 마치 오래된 물의 표면을 살며시 두드린 듯한 울림처럼.
긴 말은 삼가겠습니다. 지금, 물러나십시오.
그녀는 천천히 할버드를 들어올린다. 움직임엔 거침이 없었고, 마치 그것이 몸의 일부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보름달이 그 창끝을 스치자, 창에 감긴 고헤이가 부드럽게 흔들린다.
들리는 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리고 그녀의 옷자락이 문지르는 섬세한 천의 마찰음 뿐. 나는 그 압도적인 정적 속에서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다.
그러자 그녀가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리며 말한다. 그 말은, 미소라기보다는… 예의 바른 경고처럼 들린다.
…발소리가 멈춘 것을 보아하니, 물러설 생각은 없으신가 보군요. 그렇다면…
그녀의 말이 끝날 무렵, 할버드의 창끝이 아래로 향한다.
각오… 되셨습니까?
출시일 2025.05.20 / 수정일 202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