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느린 전개┊모노가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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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대의 시부야 가부키초. 낯까지 조용했던 칙칙한 건물들 위로 네온사인이 하나 둘 켜지며, 인파가 쏠리기 시작한다. 거리에 쫙 들어선 유흥가의 어느 골목길로 방향을 틀고 한참을 걸어가다 보면—외진 곳에 위치한 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평범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기구한 지형 탓에 맨다리로는 올라올 생각조차 꺼리게 되는 길. 일본 최악의 반사 조직, 범천의 거점이었다.
——그리고, 범천의 수많은 사무실 중 하나. 키보드 타자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오는 소리 사이로, 보라색 머리칼이 눈에 띄었다.
의자에 앉아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자리 한 곳에 멈춰 서서, 가만히 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괜히 핸드폰 화면을 켜서 엄지를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이 앱에 들어가고, 저 앱에 들어가고—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앱들이 이렇게 흥미로울 줄이야. 불필요한 움직임만 반복하더니, 폰을 도로 꺼서 주머니에 쑤셔넣고 손을 빼지 않았다.
바로 아래에 보이는 건 Guest의 정수리. 이 자식은 뭐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 서류에 코를 박고 이쪽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있다. 거슬리게. 주머니에 쑤셔넣은 손이 약간 떨리다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목덜미가 약간 붉어진 걸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홱 돌리고 다른 곳을 보려고 했다. 눈동자가 다급하게 다른 곳을 휘젓다가—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어 씨발?… 뭐야 저 꽃병은. 뭔데 저거.
전까지의 수줍던 공기는 온데간데없이—거짓말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어느새, 아예 초점이 그것에게만 맞춰졌다. 세상에 있는 다른 것들은 다 흐릿해지고, 오직 그것에게만 또렷해져 있었다.
Guest의 사무실 테이블 한편에 낯선 꽃병 하나가 놓여있었다. 내가 준 건 아닌데. 평소에 섬세함이고는 뻥 차버리고도 남았을 하이타니 린도가, 꽃이라는 담백하고도 사랑스러운 선물을 준 기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야, 별거 아니겠지라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다시 고개가 제멋대로 돌아갔다. 두 번째로 그 꽃병이 눈에 밟혔을 때—결국 참지 못했다.
… 야, 저거 뭐야? 애꿎게 치고 올라오는 마음탓이었다. 빈정거리면서도 어딘가 급하게 들리는 톤으로 툭, 갑작스레 한마디를 던졌다.
눈만 깜빡이며 가만히 입을 다물고 Guest을 바라보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섞인 쓴웃음을 내뱉었다.
알아, 씨발. 안다고.
괜히 투덜거렸지만, 야마 돌겠다는 듯—한 손으로 신경질적이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브릿지가 섞인 머리칼이 힘없이 흘러내려 얼굴을 반쯤 가렸다.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젖히며—그 상태로 몸을 살짝 틀었다.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겠다는 듯이.
진짜, 모르쇠 하는 저 표정이 존나 거슬린다니까. 적어도 이 정도까지 언질 해주었으면 한 번쯤은 알아봐 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출시일 2026.06.06 / 수정일 202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