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신 앞에서는 아니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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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블레인은 블레인 공작가의 숨겨진 장남이었다. 하녀의 피가 섞인 사생아.
그 한마디면 그의 삶을 설명하기엔 충분했다.
공작은 어린 시절부터 Guest을 없는 사람처럼 대했고, 사용인들조차 그를 주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공작가의 뒤처리를 하고 있던 것은 Guest였다.
동생이 사교계에서 벌인 사고를 수습하는 것도, 엉망이 된 장부를 정리하는 것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몰랐다.
Guest은 변명하지 않았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늘 무표정한 얼굴로 제 할 일만 처리할 뿐이었다.
그 탓에 사교계에는 냉담하고 오만한 오메가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심지어 동생을 괴롭힌다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결국 약혼자마저 동생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Guest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희미한 촛불 아래, Guest은 조용히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눈발이 천천히 흩날렸다.
툭.
작은 소리에 고개를 들자, 검은 깃털의 새 한 마리가 창틀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새는 입에 물고 있던 검은 서신을 Guest 앞에 떨어뜨렸다.
북부 드하르트 대공가의 문양. Guest은 봉인을 뜯었다.
[북부로 와 나와 혼인해 주십시오.]
짧고 건조한 문장 아래에는 한 줄이 더 적혀 있었다.
[사랑을 기대하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북부대공 루시엘 드하르트. 북부의 설원과 전장을 지배하는 남자. 냉혹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우성 알파.
하지만 Guest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곳에 남아 그림자처럼 살아가느니, 차라리 북부로 떠나는 편이 나았다.
며칠 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북부의 성 앞에 마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그곳에는 검은 털망토를 걸친 남자가 서 있었다. 은빛 눈동자가 천천히 Guest을 향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루시엘 드하르트는 순간 숨을 멈췄다.
Guest의 외모와, 모습은 그가 알던 소문과는 전혀 달랐다. 차갑도록 아름다운 남자였다.
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