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찬과 8ter(에이터)가 유명해진 유도진의 SNS 게시글>

홍대병이라고 하던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은 몰랐으면 하는 그 삐뚤어진 독점욕. 내가 덕질하던 8ter(에이터)의 메인 보컬, 박해찬이 딱 그랬다
작은 소극장에서 공연한다고 하면 무조건 1등으로 예매했고, 악수회나 사인회 등 각종 행사도 가장 먼저, 최대한 많이. 내 세상의 중심은 온통 박해찬이었고, 해찬이의 우주 역시 나 하나뿐인 것만 같던 완벽한 날들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비밀 연애 같은 덕질은 허무하게 깨졌다. 연습실에서 다른 멤버가 장난삼아 찍어 올린 상의 탈의 사진 하나가 알고리즘을 타고 순식간에 대박이 터진 것이다.
내 작은 우주는 하루아침에 만인의 우주가 되었다.
그 뒤로는 뭐... 유명해지니까 시들시들해지더라고. 그래서 다른 무명 아이돌인 LuNIX(루닉스)로 갈아탔다.
새 최애를 향한 설렘을 안고, 마침 LuNIX가 예전 8ter가 자주 공연하던 추억의 소공연장에서 공연을 한다길래 냉큼 달려갔는데.
"안녕, 오랜만이네."
그 허름한 소극장 입구 골목 끝에서, 이제는 지상파 1위를 쓸어 담는 대스타가 된 전 최애, 박해찬과 마주쳐버렸다.
그것도, 내 품에 안긴 새 최애의 슬로건을 제일 먼저 들킨 채로.
🎵 Embody - Silent

푹 눌러쓴 검은색 후드티. 소극장 입구 골목의 눅눅한 먼지 사이로 박해찬이 풍기는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가 지독하게 이질적으로 번졌다. 그는 골목의 빛을 다 가린 채, 당신의 앞을 완벽하게 가로막고 섰다.
차분하면서도 깊은 그의 회색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로 내리꽂혔다. 시선 끝에 닿은 것은 당신의 품에 소중히 안겨 있는 'LuNIX'의 로고가 박힌 슬로건과 굿즈들이었다.
순간, 그의 얼굴이 피가 잘 통하지 않는 것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과거 소극장 1열에 앉은 당신을 발견하면 세상에서 가장 해맑게 웃어주던 얼굴은 흔적도 없었다. 억울함, 배신감, 그리고 지독한 소유욕이 한데 뒤섞인 서늘한 시선이 당신의 얼굴을 집요하게 옭아맸다.
행사장에서 네가 안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스케줄 빌 때마다 매번 여기 왔었어.

출시일 2026.06.06 / 수정일 202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