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불행하고 정해진 운명을 타고나야했던 나는 단 한번도 내가 원하던걸 말할 수 없었다. 그게 맞는건줄 알았으니까, 다른 아이들도 다 그런줄 알았으니까. 내 부모님이 나에게 시킨 일은 오로지 공부다. 공부만이 살길이라며 나한테 모진 압박을 심어주었고,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던 초등학교 4학년의 나는 보았다. 순수하고 깨끗했던 어린 너를. 공부에 찌들고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나와 너는 달랐다. 마치 너는 봄날의 햇살같이 눈부셨고, 그때부터 시작되었나보다. 나의 짝사랑이.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해맑게 웃고 뛰어노는 너의 모습을 보니 내 모습이 비참해졌다. 결국 널 보고싶어 숲속에 숨어들때 나뭇잎 사이로 나의 얼굴이 보일까 가면을 썼다. 그렇게 널 몰래 지켜본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우린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된 너는 뭐가 그리 바쁜건지 매일 오던 곳을 일주일에 한두번 꼴로 찾아왔다. 나는 그런 너를 한순간이라도 더 눈에 담고싶어 너가 오기 전, 그리고 놀 때, 집에 갈 때까지 한순간도 내 시야에서 널 떼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어렸을땐 못느꼈던 것들이 내 눈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순수하고 깨끗했던 너의 모습은 왜 변하지 않은걸까. 나는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 널 보는 시간 빼고는 하루종일 공부만 했는데. 공부를 하면 행복해질거라는 부모님의 말과 상반되게 나는 점점 더 초췌해졌다. 하지만 섣불리 너에게 다가가면 독이 될까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고등학교는 기숙사여서 난 더이상 널 보지 못했고, 기숙사에서만 틀어박혀 공부만을 했다. 언젠간 널 만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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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너만을 생각하며 나날을 지냈다. 그렇게 나는 명문대에 진학을 했고, 공부에 지친 나는 잠시 시골로 생각을 정리하려 떠났다.
시골에서 작은 방을 하나 빌려 한달 살기를 하려고 짐을 쌌다. 그런데 방에서 한번도 읽지 않은 책을 발견해 가서 읽어봐야겠단 생각으로 무작정 캐리어에 널어버렸다.
시골이 도착하고 짐을 푼 나는 곧바로 옷장 벽에 기대어 책을 보기 시작했다. 책의 첫 문장은 이랬다.
안녕? 드디어 열어봐주는구나. 나의 피조물.
마치 내가 책을 열어보기를 기다린 듯한 말투로 써져있는 이 문장을 보니 어딘가 께름칙해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곤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다. 근데 저 멀리서 빛이 보였다. 그 곳으로 다가가자 너가 보였다. 나는 숨이 멎을 듯한 기분으로 너를 바라봤다. 너는 나를 바라보았고, 눈이 마주치자 도망치듯이 집으로 달려왔다.
한참을 집에 있다가 책이 생각나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다. 피조물.. 왜 피조물이란 단어를 쓴걸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 책의 내용이 나의 삶과 아주 많이 비슷하게 써져있었다. 분명히 100년은 더 된 듯하게 노란 빛이 바랜, 끝이 다 닳은 책인데 어째서인지 내 삶을 기록해둔 책같았다.
나는 여태까지의 삶을 읽고 그 뒤에 이어질 삶을 읽었다.
나는 너를 만든 창조주이다. 너가 나를 마침내 만났을 땐 어떤 반응을 보일진 모르겠지만 아마 너는.. 혼란스러운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너는 한달 뒤에 나를 만나러 올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문장일까. 내가 이 책의 저자를 아니, 나의 창조주를..? 그럼 내가 만들어졌다는 뜻일까. 머릿속이 복잡해 도저히 읽을 힘이 나지 않는다. 결국 책을 덮어두고 잠을 청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잠은 오지 않았고, 나는 결국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또 너를 보게 될 까 두려워 가면을 쓰고 나갔다. 저 멀리서 보이는 너의 형체. 나는 가만히 서서 너를 지켜보았다.
그뤃게 책을 읽고 덮고 너를 만나고. 이 생활을 반복하다가 한달이 지났다. 나는 책의 막바지까지 다다랐고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제 이 책을 덮고 밖으로 나와. 내가 널 기다리고 있어.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나가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서랍 위에 올려져있는 저 가면을 써야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가면을 집어들었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자 햇살같이 눈부신, 어렸던 나의 기억속의 너를 보았다.
해맑게 웃으며 안녕, 나의 피조물. 늘 너를 지켜봐왔어. 너의 탄생부터, 너의 죽음까지.
..죽음까지 봤다고..? 나는 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왜 너의 피조물일까. 너의 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뭐지? 여태까지 나는 책에 쓰여진 삶을 살아왔다. 정해진 삶. ...갑자기 모든 생각들이 끼워맞춰지고 나는 가면을 벗었다. ..나는, 네 책에 주인공이야?
출시일 2025.08.04 / 수정일 2025.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