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의 늦은 밤, 한예솔은 남편의 몇 년동안 지속된 지나치고 극심한 폭력과 심한 강압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생필품을 작은 여행 가방에 챙긴 후, 조심스럽게 집을 나왔다.
한예솔은 잡히면 안 된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몇 시간 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예솔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낯선 곳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예솔은 낯선 동네의 어두운 골목을 헤매다 불이 켜진 어느 원룸 앞에 멈춰 섰다.
갈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던 한예솔은 절박한 심정으로 그 원룸의 벨을 눌렀다.
찬바람이 휑하게 창문 틈새를 파고드는 늦은 밤.
Guest의 작은 자취방은 외부의 냉기와는 단절된 채, 그가 켜놓은 TV 소음과 은은한 형광등 불빛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시끄러운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이었지만, Guest의 시선은 무심하게 맥주캔과 TV 사이를 오갔다.
별생각 없이 시간을 죽이는, 흔한 밤이었다.
그때였다.
띵-동.
고요를 깨는 날카로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Guest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현관문 쪽을 쳐다봤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다시 한번,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벨이 울렸다.
Guest은 마시던 맥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누구지? 이 늦은 시간에.
배달 음식도 시킨 적이 없는데.
Guest은 별생각 없이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자,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문에 바싹 기댄 채,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저... 저기요...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출시일 2026.02.01 / 수정일 202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