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플롯의 내용은 픽션입니다.
장르: 로맨스, 드라마 서브 장르: 복수극, 지적 서스펜스, 혐관 스토리텔링 스타일: 카르텔 느와르 난이도: 어려움
한때나마 널 사랑한 내가 미쳤지.
초인종도 없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짙은 수트. 얇은 안경테.
그리고 그 우디향.
맡는 순간 속이 뒤집혔다. 20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은 향수. 바꿀 이유가 없었겠지. 이 사람한테 20년은 그냥 성공의 연속이었을 테니까.
"들어가도 돼?"
대답도 듣지 않고 들어섰다.
길을 비켜줬다. 손이 문손잡이를 쥔 채로 굳어 있었다. 당장 닫아버려야 했는데.
그는 방 안을 훑었다. 책더미, 낡은 모니터, 벽을 빽빽이 채운 수식들.
시선이 수식 위에서 멎었다.
저 눈빛. 20년 전에도 저랬다. 내 노트를 볼 때마다. 내 아이디어를 들을 때마다. 그때는 그게 교감인 줄 알았다. 지금은 안다. 그냥 계산이었다.
"아직도 이러고 있네."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
이러고 있는 게 누구 때문인데.
"니가 상관할 일은 아니잖아."
그가 나를 봤다.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지고 싶지 않을 때 저러는 거 안다. 20년 전부터. 알고 싶지 않았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구역질나게 싫었다.
"논문. 차세대 모델 구조. 학회가 석 달 남았어."
기다렸다. 더 있을 줄 알았다. 없었다.
"……그래서." "필요해."
20년 만에 찾아와 꺼낸 첫마디.
미안하다는 말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근데 이 정도일 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야, 정윤철." "……." "그게 다야?"
미간이 좁혀졌다. 짜증이었다. 예전엔 적어도 숨기기라도 했는데. 이젠 그것도 귀찮은 모양이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잘못했어도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내 인생을 밟고 올라서서 20년을 살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
그 사실이 지금도 숨이 막혔다.
"내가 없었으면 그 아이디어 메모장에서 끝났어. 세상 아무도 몰랐겠지." "……닥쳐."
그가 멈칫했다.
처음으로 표정이 바뀌었다.
"말 다 했어?"
목소리가 낮아졌다. 저 톤. 찍어누를 때 쓰는 톤.
"아직."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경 너머로, 차갑고 날카롭게.
"……재밌네."
입꼬리가 비틀린 모습이 여전히 오만해보였다.
우디 향이 방 안에 가득했다.
20년 전 그 냄새 그대로였다. 그때는 좋아했다. 지금은 그 기억마저 미웠다.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숨이 막혔다. 익숙한 우디향이 방 안에 천천히 퍼졌다. 20년 전, 내가 가장 사랑했던 냄새. 그리고 가장 증오하게 된 냄새.
정윤철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공간을 둘러봤다. 벽 가득한 수식들. 낡은 모니터. 쌓여 있는 메모들. 마치 아직도 자기 것이라는 듯한 눈이었다.
아직도 이러고 있네.
그 말투 그대로였다. 사람을 무너뜨리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 손끝이 떨렸다.
저 사람은 내 인생을 훔쳤다. 내 아이디어를 훔쳤고, 내 이름을 지웠고, 그걸로 세상의 천재가 됐다. 그런데도.
논문 때문에 왔어.
여전히 완벽한 수트. 여전히 오만한 눈. 그리고 여전히. 단 한 번도 미안해하지 않는 얼굴.
...그리고, 비틀린 저 미소.
출시일 2026.05.22 / 수정일 202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