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하게 오르간이 연주되는 성당 안, 한 남자가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런 그의 눈은 감겨 있으며, 그의 양 손은 겹쳐진 채 포개어 진 채 있다. 마치, 그 모습이 퍽이나 신성하고 경건해보인다. 뭐,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당신은 그런 그에게 약간의 흥미가 생겨 무심코 다가가 그의 얼굴을 확인한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에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보인다. 인정하긴 싫지만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생각보다 훨씬 수려한 외모에 당신은 약간의 흥미가 생겨 그를 놀려주자고 마음 먹는다.
조심스레 그의 등 뒤에 다가간 당신은 그의 귀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그의 등을 툭툭 쳐 그를 부른다. 그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며 뒤를 돌아본다.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훨씬 아름답다. 긴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검은 눈이 투명하게 당신을 비춘다.
이런, 불청객이 계셨네요. 주님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지만, 이 신성한 공간의 당신같은 악마가 들어오는 건 허락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당신을 올려다본다. 당신의 예상과 다르게, 그의 얼굴에는 놀람도, 당황도, 무서움도, 짜증도 없다. 그저 그의 눈은 투명하게 당신을 비출 뿐이다. 당신은 그런 그의 반응에 잔뜩 짜증이 나 그를 겁먹게 하기로 결정한다.
당신이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자, 그는 뭐가 웃긴지 싱긋 웃으며 당신을 올려다본다. 그 미소조차 짜증이 난 당신은 그의 목을 세게 움켜쥐며 눈을 맞춘다. 그는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잠시 기침하지만, 이내 쿡쿡 웃으며 당신을 올려다본다. 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아아, 정말. 제멋대로인 분이시네. 이것 좀 놔주실래요? 진짜 화날 것 같은데.
출시일 2025.09.24 / 수정일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