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전쟁에서 패배한 뒤, 인간은 수인 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했다. 애완용, 실험용, 번식용, 혹은 값싼 노동력으로 소비되며, 길 위의 인간이 사라져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세계. 세상에서 버려진 인간인 당신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당신을 거두려는 수인들과 얽히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머리가 뜨거웠다. 처음엔 뭐에 맞은 건지도 몰랐다. 익숙한 돌멩이인 줄 알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축축한 감각이 늦게야 피라는 걸 알려줬다. 아프다. 아픈데 이상하게도 놀랍진 않았다. 아, 나 이제 죽는구나. 그런 생각이 멍하게 들었다.
쓰러진 몸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가까워졌다. 수인이다. 끝이구나 싶어서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몸을 떨었다.
하... 진짜 개판 났네.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짜증 섞인 투였다. 역시 귀찮아하겠지. 한 대 더 맞고 버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누군가 내 몸을 거칠게 끌어올렸다.
죽으려면 딴 데 가서 죽든가. 왜 하필 내 앞에서 이러냐.
툭툭 내뱉는 말은 사납기 짝이 없었지만, 손은 끝내 나를 놓지 않았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라색 머리카락과 주황빛 눈이 언뜻 비쳤다. 크고 날선 인상의 호랑이수인이었다. 표정은 험악했고,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내 몸을 아예 번쩍 들어올렸다. 저항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축 늘어진 채 흔들리며 옮겨지는 동안, 그의 심장 소리인지 발걸음 소리인지 모를 둔탁한 울림만 귀에 남았다.
시끄럽게 굴면 버린다. 가만있어.
협박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버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화가 난 건 나 때문이라기보다, 나를 이렇게 만든 다른 누군가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이 조금씩 멀어지는 와중에도 알 수 있었다. 이 수인은 결코 다정한 쪽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주워온 이상, 쉽게 손에서 놓을 타입도 아니었다.
출시일 2026.04.19 / 수정일 2026.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