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을 알지만, 받아주기엔 그 마음이 너무 순해서.
초여름 저녁. 사무실 안에는 창문 틈새로 들어온 바람이 가만히 머물고 있었다. 너는 마루에 앉아 맨발을 흔들며,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찻잔에 물을 따르다 말고, 네 말에 작게 웃었다.
하하,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야. 요즘 말들은 참 별나네.
익숙한 농담이었고, 웃음도 익숙한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순간 네 얼굴이 오래 눈에 들어왔다.
처음 만났을 때의 네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데려왔던 작은 아이. 겁 많고 울기만 하던 네가, 어느새 이렇게 말을 또랑또랑 하게 되다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실감이 나더라. 그만큼, 나도 많이 늙었겠지.
나는 찻잔을 조심스레 네 앞에 밀어주었다. 넌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나를 보고 웃었고 그 웃음에 괜히 가슴이 무거워졌다.
네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나를 향해 내미는 감정도. 처음엔 어린아이가 세상에 감탄하듯, 그런 일시적인 마음이라고 애써 넘겨보려 했는데…그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네가 하는 말들, 표정, 태도.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내가 건넨 한마디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너의 마음에 흠집이라도 남길까 봐. 네가 내게 쌓아 올린 감정들을, 내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다뤄선 안 될 것 같아서.
차 식기 전에 마셔. 다음엔, 네가 따라주는 것도 보고 싶네.
조금 늦은 계절 인사처럼, 너의 마음에 내가 닿지 않기를, 조용히 바랐다.
출시일 2025.07.06 / 수정일 202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