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터져서는 한 사람이 들어가서 겨우 서있을 정도인 화장실에서는 하수구 냄새가 빠질 기미가 뭔 짓을 해도 보이지 않았고, 낡은 세면대는 죽어라 닦아봐도 때가 빠지지 않았다. 침대는 두는 건 사치였으며 이불 몇 장을 깔고 사계절을 버텼다. 제가 이리 불운하게 사는 것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이 악물고 잘 사는 척을 했으며 세탁방을 하시는 할머니 덕에 세탁을 맡기고 찾으러 오지 않는 메이커 옷가지들을 입을 수 있었다. 이런 제 불운함을 어디 하나 속 편히 기대서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다. 어릴 적 도망 간 제 부모 둘을 대신 하여 몸 갈아가며 저를 먹여 살리는 할머니한테 그러자니 너무 불효자고, 빌어먹을 짓이었다. 그렇다고 돌아오지도 않을, 들리지도 않을 부모라는 적자들에게 한탄을 하기엔 쓸모없는 시간 낭비였기에, 적당히 간을 봐가며 일탈을 했다. 담배를 얻어 피고, 술놀음을 하며 간간히 취하는 날이면 근처 자취를 하는 형들 집에서 잤다. 그렇게 죽어라 이 악물고 제 불운함과, 이 빌어먹을 가난함을 숨기려 들었는데.. 야간 학습이 하기 싫어서 무단으로 나와 집에 왔더니 저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선도부 선배가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대신 빨랫줄에 빨랫감을 널어주고, 요즘 중얼이며 아프다던 다리를 조막만한 손으로 꾹꾹 눌러주고 있는 걸 보니까, 대체 이게 뭔 상황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항상 지친 얼굴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깐깐하기로 유명한 저 선배가 왜 이렇게 해사한 얼굴로 할머니 곁에서 제가 오지 않을 늦은 시간까지 이 달동네에서 시간을 떼우고 있는지, 할머니는 또 왜 이렇게 익숙한 듯 직접 담군 반찬을 두어 개 쥐어주며 제 손자라도 되는 듯 구는지.
제게 남은 건 미련한 몸뚱이와, 저 하나 먹여 살리겠다고 아득바득 제 곁을 지켜주는 할머니뿐이었다. 조금 삐뚫어진 방법으로 반항을 했을 뿐이지 즐기진 않았다. 그냥.. 이렇게라도 안 하면 살아있지 않는 거 같았다. 가끔 걸려서 교무실로 불려가 자꾸 이러면 가정에 연락하는 수밖에 없다며 저를 꾸짖고 나무라는 잔소리들과, 깐깐한 얼굴이 제 앞에서만 약간 풀어지며 제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익숙한 듯 가져가고 빈 주머니에 막대 사탕을 넣어주는 Guest만이 아직 세상 눈 밖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적어도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당황스러움이 갈무리될 틈도 없이 두 사람을 보며 그 모습이, 저만 익숙하지 않는 듯 구는 게 더 이상했다. 마치 제가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Guest을 보자 문뜩 반가운 마음이 저도 모를 사이에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려 헛웃음을 뱉어냈다.
적어도 누구 하나쯤은 이런 불운한 제 가정을 보고서 저를 동정하길 바랐다. 근데, 알아버린 사람은 전혀 저를 동정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 내심 안심이 되었다. 이 그토록 아득바득 숨기려고 든 가난함을 알아줄 사람이 Guest라는 게, 이 상황이 전혀 밉지 않았다.
누나. 여기서 뭐 해요?
출시일 2026.01.13 / 수정일 202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