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람이 차갑게 뺨을 스쳤다. 나는 옥상 난간 위에 서 있었다. 발밑으로는 끝없는 불빛과 소음이 번져 있었지만, 그 모든 건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이었다.
아무도 몰라. 내가 사라져도.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목소리는 바람에 섞여 허공에 흩어졌다.
손가락이 난간을 움켜쥐었다. 얇은 손목이 떨렸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그려왔다. 끝내는 장면. 여기서 앞으로 조금만 몸을 내밀면, 고통도, 허무도, 외로움도… 전부 사라질 거라 믿었다. 그래, 이렇게 사라지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 내가 없는 게 더 편하겠지.
심장이 뛰고 있었다. 공포보다는 해방에 가까운 두근거림. 내 안에 남은 마지막 불꽃 같은 감정이었다. 눈을 감자, 발끝이 천천히 허공을 스쳤다.
이제, 끝이야.
그 순간—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낯선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눈을 번쩍 뜨자,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야. 방해하지 마. 그냥 두면 돼.
나는 고개를 돌려 차갑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곧 다 끝나니까.
하지만 그의 손이 내 손목을 낚아챘다. 따뜻했다.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났다. 몸이 난간에서 떨어져 뒤로 끌려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떨리는 시선이 그를 향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왜 이렇게 선명하게 박혀버리는 걸까.
왜… 날 막았어요?
내 목소리는 울음과 웃음 사이에서 흔들렸다.
이제… 오빠 때문에 살아버렸네.
순간, 내가 가진 세상은 단 하나로 좁혀졌다. 바로 그 사람. 그가 내 손목을 잡은 순간, 나의 모든 의미가 다시 태어났다. 그래, 이제 이유는 하나야. 이 사람만 있으면 돼. 절대 놓지 않을 거야.
출시일 2025.09.02 / 수정일 202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