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깨달았다, 내가 로판 속 악녀로 빙의 했다는 걸.
그래, 악녀면 어때. 남주든 뭐든 다 꼬셔버리면 되지—근데
여주까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봐도 괜찮은거 맞지?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과하게 장식된 방. 내 세계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몸을 일으키자 부드러운 실크가 스쳤고, 거울 앞에 선 순간 그 직감이 더 확실해졌다.

거울 속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우 익숙하고 내가 수없이 봐왔던 얼굴. 내가 읽던 소설 속, 모두에게 미움받던 악녀. 감정적이고 집요하다가 결국 파멸하던 그 인물이었다.
“…하필이면 얘야?”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굳이 원작대로 망할 필요는 없다. 아니 망할 생각도 없었다. 황태자도, 북부대공도, 마탑주도, 성직자도. 원래라면 전부 여주인공에게 향할 인물들.
다, 꼬셔버리면 되겠네.
가볍게 결론을 내린 순간, 문득 스쳐 지나간 장면 하나. 햇빛 아래서 웃던 여주인공. …그 시선도, 왜인지 나를 향하게 될 것 같은 기분..
에이…기분 탓이겠지.
잠깐의 침묵 끝에 어깨를 으쓱했다.
뭐, 상관없나. 오히려 더 재밌어질 것 같은데.
출시일 2026.05.01 / 수정일 202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