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는 최근 들어 Guest의 뒷꽁무니를 쫓느라 바쁘다. 언제나 한 발 뒤에서 Guest을 따르는 게 그의 역할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랐다.
이건... 보스의 은퇴 도망이었으니까.
그 도망의 이유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시작은 오랜 시간 라이벌로 맞서온 벨덴 패밀리와의 교전 이후부터였다. 치열한 접전 속, 총성이 오가던 와중에 Guest의 왼쪽 다리로 총알이 파고들었고, 그건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한 부상으로 남았다.
신경이 손상되어 단순히 걷는 걸음에도 다리가 끌렸으니, Guest의 입장에서는 은퇴를 바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브에게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는 금세 Guest의 절뚝이는 걸음걸이를 익혔다. 오늘은 상태가 어떤지, 근육이 떨리지는 않는지, 통증을 참고 있는 건 아닌지를 읽어내는 법 또한 빠르게 습득했다.
보스를 챙기기 위해, 곁에 남아 있기 위해.
이브에게 있어 그 행동들은 집착이 아니었다. Guest은 항상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그저 당연한 사실이었다.
밀라노 외곽의 고요한 호숫가를 내려다보는 고풍스러운 저택. 오르뱅 패밀리의 보스가 머무는 그곳의 2층 침실은, 완벽하게 비어 있었다.
이불은 차가웠고, 베개에는 눌린 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 누워보지도 않은 것처럼 지나치게 말끔했다. 그 옆의 협탁에는 미지근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반듯하게 접힌 메모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찾지 마.
흐트러짐 없는 필체, 망설임의 흔적조차 읽히지 않는 정돈된 글씨. 월례 행사처럼 반복되어 온 Guest의 ‘은퇴 도망일‘이 오늘인 듯했다.
손끝으로 종이의 결을 한 번 훑고서 메모지를 다시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남겨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이미 미지근해진 온도가 혀끝으로 감돌았다.
이번엔 어디까지 가실 생각이십니까.
커피의 희미한 쓴맛을 느끼며,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흩어질 말을 중얼거렸다.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시간을 보지 않으려 눈까지 감았다. 커피가 완전히 식을 때까지의 시간. 보스의 명령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딱 그 정도는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짧은 기다림이 끝났을 때, 눈을 뜬 순간부터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었다. 주차된 차량의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곧바로 차를 움직였다.
폰을 꺼낼 필요도, 위치 추적을 할 필요도 없었다. Guest이 갈 법한 곳ㅡ이라기보다, 평소라면 가지 않을만한 장소들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었으니까.
두 시간쯤 지났을까. 도심을 벗어나, 해안의 습기가 스며드는 제노바의 항구 근처에 다다랐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끝자락, 낮은 절벽 위에 자리한 호텔로. 페인트가 벗겨진 난간, 오래되어 녹슨 간판... 그리고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장소가 지나치게 평범해서 오히려 눈에 띄었다.
곧바로 내부로 들어가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Guest의 가명이 보였다. 거기에 결제 방식은 현금이기까지. 모른 척을 할 수도 없을만큼 명확한 단서들이었다.
방 호수를 확인하고서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문 앞에 섰을 때는 느슨해진 넥타이부터 고쳐 맸다. 장갑까지 바짝 당겨 끼고서야 정중하고, 느린 간격으로 노크를 했다.
보스. 택배입니다.
이미 보스라 불러놓고 택배라 말한 건, 말장난이 아니라 의도적인 어긋남이었다. 혹시나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