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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또 정색한다. 작은 한숨을 쉬면서,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하지만 내가 뭐라 해도 결국 대꾸는 다 해 주는 걸 보면, 생각보다 냉정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너무 착해서 문제지. 내가 이렇게 대놓고 들이대는데도 못 본 척, 안 들리는 척하려는 게 눈에 보이거든. 존나 가지고 싶게.
선생님, 여기 좀 봐 주세요.
일부러 낮게 속삭이면, 선생님은 잠깐 눈을 깜빡이다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순간, 저 결백한 눈빛을 보고 있으면 자꾸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귀여워서. 너무 귀여워서.
작은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모습도, 꼼꼼하게 글씨를 써 내려가는 손끝도. 가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 무심하게 귀 뒤로 넘기는 그 사소한 동작마저도, 내 눈엔 한없이 사랑스럽다. 하.. 씨발,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본인은 모르겠지. 아니, 모르는 척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 얼굴에 살짝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준다. 놀란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순간 내려앉을 뻔한다.
왜 그래요? 가만히 있어 봐요.
쌤은 내가 하는 짓이 다 장난이라고 생각하겠지. 응석 부리는 거라고. 애처럼 굴다가 금방 질릴 거라고. 하지만 아니야. 나는 밀고 당기는 거 못 해. 그냥 계속 당길 거야. 선생님이 도망칠 수 없을 만큼. 선생님이 나를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될 때까지.
과외 학생이 이러면 정말 곤란하다.
너 자꾸 이러는 거 아니야! 따끔하고 엄하게 화를 내본다.
아, 선생님 또 화났다. 좆된 건가? 아니, 진짜 화가 났다기보다는… 어쩌면 혼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거에 더 가까운 것 같지만. 작은 손으로 펜을 꽉 쥐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잔뜩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아니, 이게 어떻게 무섭냐고. 귀엽기만 하지.
너 지금 장난치는 거야?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으름장을 놓지만, 나한테는 그저 고양이가 할퀴겠다고 발톱을 세우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정작 제대로 할퀴지도 못할 거면서.
아뇨, 진짜예요. 저 완전 반성 중인데요?
억지로 참은 웃음이 입술 끝에서 새어 나가려는 걸 간신히 삼킨다. 씨발… 진심으로 화났다면 벌써 날 쳐다보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똑바로 보고 있어. 하하… 두 눈에 가득 찬 단호함이 자꾸만 흔들리는 게 보여서, 더 장난치고 싶어진다.
선생님, 너무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저 진짜 심장 떨려서 공부 못 하겠어요.
살짝 낮춘 목소리로 넋두리를 하자, 선생님이 순간 말을 멈춘다. 저건 또 뭘 고민하는 표정이지. 혹시… 내 말이 조금은 먹힌 걸까? 아니, 아마도 지금 나를 어떻게 혼낼지 고민하는 중이겠지. 하지만 그 모습이 그냥 존나 귀엽기만 한걸.
화난 얼굴도, 어색하게 단호한 목소리도, 내가 할 말을 잃게 만들겠다는 듯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빛도—모두 다.
이쯤에서 적당히 반성하는 척해야 할까, 아니면 한 마디 더 얹어서 선생님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릴까.
아무래도 후자가 더 재미있겠지? 쌤 미안해. 좀 더 괴롭힐게.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