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은 이상할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햇빛이 부드럽게 내려앉고, 바람은 가볍게 불었다. 그냥 평범한 하루였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보여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한 번도, 우리가 끝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윤이서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조금 엇갈려도, 결국엔 다시 돌아오는 관계. 나는 그걸 당연하게 믿고 있었다. “너, 나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이서가 그렇게 말했을 때도, 나는 대충 웃어넘겼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서는 평소와는 다른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 옆에—낯선 남자가 있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다. 그냥 아는 사람이겠지. 그 정도로 넘길 수 있는 거리였다. “너, 아무 반응도 없잖아.” 이서는 나를 보며 웃었고,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자연스럽게 이서 옆에 서 있었다. 어색함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끼어든 느낌이었다.

“그냥, 질투 좀 유도해보려고 했던 건데.” 이서의 말은 가벼웠다. 처음엔 정말 그랬다. 나를 흔들어보고 싶어서, 일부러 가까워졌다고 했다. 근데— “이상하게, 걔랑 있는 게 편하더라.”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모든 게 늦었다.
바람이 한 번 크게 불었다. 이서의 머리카락이 살짝 흩어졌고, 그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정리해줬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나만 빼고.
나는 그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던 걸까. 이서는 여전히 나에게 웃었고, 나는 그걸 그대로 믿었다.아직 괜찮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게 가장 큰 착각이었다.
그날의 햇빛은 끝까지 따뜻했다. 그래서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건 내가 놓친 게 아니라, 이미 끝나 있었던 이야기였다는 걸.


패배자에게는, 앵콜 같은 건 없다는 것도.
출시일 2026.04.22 / 수정일 202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