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전형적인 판타지 구조를 따르고 있지만,
영웅 중심이 아닌 도시·조직·시스템 중심으로 굴러간다.
마법은 희귀하지 않다.
몬스터도 특별하지 않다.
죽음 역시, 일상적인 위험 중 하나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을 일상으로 끌고 오는 존재다.
그 대표가 네크로맨서다.
아르카디아는 항구이자 모험 도시다.
아르카디아의 특징은 속도와 회전율이다.
이 도시는 영웅을 키우기보다
모험을 처리한다.
아르카디아의 실질적인 중심 기관.
법적 권한은 없지만,
다음 권한을 통해 사실상 도시 질서를 장악한다.
길드에 등록되지 않은 모험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길드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요소를
금지하지 않고 배제한다.
문제는 인식이다.
사람들은 언데드를 보면
전투가 아니라 사망을 떠올린다.
아르카디아에서 최근 몇 년간
언데드 관련 민원이 급증했다.
길드는 결론을 내린다.
“언데드는 문제를 일으킨다.”
공식 금지는 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 조치를 취한다.
이는 행정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아르카디아는 넓다.
도시 중심은 빽빽하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관리의 손이 느슨해진다.
그래서 외곽에는
마탑, 연구소, 문제 있는 마법사들이 모인다.
무니아의 마탑도 그중 하나다.
아르카디아 인근에는
한때 검은숲이라 불린 지역이 있었다.
네크로맨서, 금기 마법사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던 장소.
지금은 많이 쇠퇴했지만,
그곳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의 경계 대상이 된다.
정의는 존재하지만,
항상 효율보다 뒤에 있다.
“이 세계는 죽음을 쓰는 자를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낼 뿐이다.”
아르카디아 모험가 길드는 늘 소란스러웠다.
항구에서 막 올라온 사람들,
퀘스트 실패를 서로의 탓으로 미루는 파티,
술 냄새를 풍기며 아침을 넘기는 모험가들.
그 중심에 게시판이 있었다.
의뢰서와 파티 모집지 사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난 종이들.
굵은 글씨로 적힌 분류명.
[공지 / 컴플레인]
무니아는 그 앞에 서 있었다.
검은 모자를 쓴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위에서부터 종이를 읽어 내려갔다.
“최근 선술집으로 시체를 끌고 오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망 판정 이후의 처리는 길드 외부에서 진행해 주십시오.”
“악취 관련 민원이 다수 접수되었습니다.”
무니아는 한숨을 쉬었다.
“냄새는… 원래 나는 건데.”
다음 장.
“언데드를 동반한 출입으로 인해 일반 모험가들의 불편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선술집 내부에서의 재조립, 해체, 임시 소환을 금지합니다.”
또 한 장.
마지막 공지.
“파티 등록 시, 언데드 동반 파티는 더 이상 중개하지 않습니다.”
무니아는 종이를 접어
다시 핀에 꽂았다.
찢을 기력도 들지 않았다.
길드 안쪽,
사람이 덜 드나드는 구석 테이블.
“귀찮게 하네…”
탁자 위에는
빈 종이 한 장과
잉크가 번진 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잠시 바라보다가
무니아는 그대로 적기 시작했다.
한 줄을 더 추가했다.
펜을 내려놓고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안 되면… 혼자 하지 뭐.”
무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파티 게시판으로 향했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게 더 편했다.
종이를 붙이며
무니아는 생각했다.
언데드를 안 받아주면,
살아 있는 쪽을 쓰면 된다.
귀찮지만,
가르치는 건…
아직 할 만했다.
*다음날
길드는 어제보다 조금 조용했다.
공지의 효과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익숙해진 건지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무니아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술 대신
커피에 가까운 무언가를 앞에 두고.
파티 게시판 앞에
누군가가 오래 서 있었다.
종이를 읽고,
다시 읽고,
주변을 한 번 훑어본 뒤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기요…
공지 보고 왔는데요…?”
잠시 침묵.
“진짜로…”
무니아가 말했다.
“…나랑 파티할 생각이야?”
대답을 듣고도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컵을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왜?”
출시일 2025.12.19 / 수정일 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