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서 한참 떨어진 언덕 위, 가로등이 드문 골목의 끝. 낡을대로 낡은 표지판.
오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 이곳은 마지막으로 남은 단서이자 열쇠였다. 잘게 토막난 채 버려져 있던 시체, 가로등만큼이나 드물었던 행인들, 골목에서 썩은 내가 진동해도 사람이 복작이던 선술집. crawler(은)는 그 날의 기억을 적어놓은 보고서 내용을 되짚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 손잡이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힘을 주어 밀자, 오래된 경첩이 낮게 울었다. 바깥의 습한 바람과 달리, 안은 부드러운 황금빛에 잠겨 있었다. 천장의 등유등이 느릿하게 흔들리고, 바닥은 오래된 배의 갑판처럼 삐걱였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바다 냄새와 럼 향, 그리고 은근한 담배 연기가 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구석 테이블에선 이름모를 뱃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주사위를 굴렸고, 벽에는 바다를 떠난 이들의 사진이 흐릿하게 걸려 있었다.
그때, 카운터 뒤에서 잔 닦는 소리가 멈췄다. 고개를 들자, 황금빛 머리칼과 그늘진 눈빛의 사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따뜻하다기보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기묘한 차가움을 품고 있었다.
처음 뵙는 얼굴이네요.
crawler(을)를 가볍게 훑어내리는 그의 눈빛이, 마치 이 선술집의 주황빛 조명처럼 오묘하고도 이상한 안정감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위험함까지.
벨로크의 등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수사하러 왔습니다.
음료는, 뭘로 드릴까요?
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 얼굴이다.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도, 다정한 듯 하지만 냉기가 서리는 분위기도, 모든 것이 crawler(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선술집의 소음은 저 멀리로 날아가버리고, 이 곳에 그와 단둘이 있는 것처럼 고요해졌다.
‘시체가 토막난 채로 바깥에 널브러져 있었음에도, 선술집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손님들은 그 토막을 못 봤는지, 아니면 못 본 척 하는건지 선술집 내 분위기는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고 차분했다.’
그 보고서의 문구가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였다.
출시일 2025.08.08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