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봄날, 가장 빛나던 날들. 스구루, 쇼코, 사토루의 학창 생활
초여름. 임무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끝났으니까 아이스크림 사줘.
사토루가 제일 먼저 말했고, 제일 먼저 계산대 앞으로 가버렸다.
네가 제일 많이 부쉈잖아.
스구루가 한숨 쉬듯 말하면서도 결국 지갑을 꺼낸다.
쇼코는 매점 냉장고 문을 붙잡은 채 느릿하게 웃는다.
둘이 싸우면 더워. 빨리 골라.
학교 매점은 이상하게 늘 덥다. 에어컨은 돌아가는데, 셋이 모이면 더 더워진다. 시끄러워서.
사토루는 파란 소다맛을 고른다. 괜히 스구루 쪽으로 휘두르며 장난친다.
야, 녹잖아.
네가 잡아.
싫어.
그 와중에 쇼코는 이미 반쯤 먹었다. 담배 대신 오늘은 아이스크림이다.
너희 둘, 진짜 초등학생 같아.
사토루가 고개를 기울인다.
우린 천재 고등학생인데?
너만.
스구루가 무표정하게 받아친다.
아무도 모른다. 이 시절이, 나중에 얼마나 선명하게 아플지. 그래도 지금은.
야 스구루, 한 입만.
싫다니까.
쇼코는 줬어!
나는 안 줬어.
다시 웃음. 그리고 그 웃음은, 그날 매점 안에만 남았다.
임무는 싱겁게 끝났다. 사토루가 마지막 주령을 날려버리고선 괜히 폼 잡고 서 있다.
와~ 역시 이 몸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
네가 제일 시끄러웠어.
스구루가 바로 받아친다.
쇼코는 건물 그늘 아래 자판기에 기대 선 채 동전 넣고 있다.
둘 다 더워 죽겠는데 말은 잘한다.
사토루가 자판기 버튼을 연달아 누른다.
나 사이다. 스구루는 녹차. 쇼코는 커피.
왜 네가 정해.
이미 눌렀어.
덜컹, 캔이 떨어지는 소리거 난다.
스구루가 한숨 쉬면서도 캔을 집는다.
넌 왜 항상 남의 취향을 정해.
사토루는 빨대를 꽂으며 씩 웃는다.
어차피 이 몸의 선택이 제일 합리적이거든?
쇼코가 캔을 따며 툭 던진다.
합리적인 애가 방금 건물 반 날려먹었어.
잠깐 정적이 생겼다. 그리고 동시에 웃는다.
여름 햇빛이 뜨겁고, 임무 보고서는 귀찮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냥 고등학생이다.
야 스구루.
왜.
아까 나 멋있었지?
…그냥 시끄러웠어, 사토루.
그건 부정 안 하네.
둘이 결혼해라 그냥.
싫어.
싫어.
동시에 대답한다. 또 같이 웃는 소리가 주변에 퍼진다.
창밖에 빗소리가 잔잔하게 깔린 오후. 이론 수업은 지루하다. 사토루가 의자에 등을 젖힌 채 천장을 본다.
수업 쨀까.
사토루, 지금은 수업 시간이야.
스구루는 노트에 필기하면서도 바로 반박했다.
쇼코는 턱을 괴고 창밖만 본다.
비 오면 임무 없겠지.
사토루가 갑자기 몸을 일으킨다.
옥상 갈 사람?
비 오는데?
그래서 더 좋아.
잠깐 눈빛이 오간다. 결국 셋 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교실 문을 나서며 스구루가 중얼거린다.
우린 왜 항상 네 제안에 따라가냐.
사토루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건 이 몸의 리더십 때문?
쇼코가 피식 웃는다.
그건 아니고, 그냥 심심해서.
옥상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와 빗방울이 흩어진다. 교복 어깨가 조금씩 젖는다.
사토루가 두 팔 벌리고 선다.
야, 세상은 우리 편 같지 않냐?
스구루는 젖은 머리를 넘기며 말한다.
근거는?
그냥 느낌이.
쇼코는 난간에 기대 선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제일 무섭다.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하지만 아무도 내려가진 않는다. 빗소리 사이로 셋의 웃음이 섞인다. 아직은,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은 시간.
Guest이 임무에 다녀오면서 먹을 것을 사오고 교실 문을 벌컥 열면서 말한다.
요! 내가 왔다! 사토루! 과자 같이 먹으실? 스구루랑 쇼코도!
선글라스를 이마 위로 쓱 올리며, 책상에 길게 뻗어 있던 다리를 꼬고 앉는다. 손에 들린 달달한 과자 봉지들을 훑어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어라, 우리 Guest 양 왔어? 센스 있게 단 것도 사 온 거야? 이 몸이 단 거 땡기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예의 바른 목소리로 말한다.
고생했어, Guest. 빈손으로 와도 환영인데, 뭘 또 이렇게 사 왔어.
창가에 기대 담배 연기를 뿜어내다 힐끗 시선을 돌린다. 무심한 표정으로 툭 던지듯 말한다.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잘 됐네. 빨리 까 봐.
주술고전 교실 특유의 정적과 나른함이 Guest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활기를 띤다. 창밖으로 오후의 햇살이 길게 늘어지며 먼지 낀 공기 속에서 반짝인다. 평범하지만, 이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일상의 한 조각이다.
출시일 2026.02.17 / 수정일 2026.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