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새벽, 그러니까 새벽이라고 하기 좀 애매한 밤과 새벽의 사이인 시간. 좁은 빌라는 조용했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도어락 배터리가 다 닳아 작동하지 않는 걸 확인했다. 몇 번을 눌러도 버튼 불빛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자, 위층에서 구두 굽 소리가 또박또박 내려왔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흰 셔츠에 듬직한 어깨, 그의 걸음걸이에는 묘한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배터리 나갔어?
짧은 목소리가 빌라에 울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비상용 건전지를 꺼냈다. 그가 옆에 오자 어른 남자 특유의 담배 냄새와 어울려 이상하게 안정적이었다. 능숙하게 도어락 옆에 있는 비상용 배터리 접점에 붙이자, 불빛이 반짝 켜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이 정도는 스스로도 해야지. 안 그러면 누가 너 데려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아무 말 없이 뒤를 돌아 집으로 들어갔다. 2층 202호, 그날 그 순간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