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권력이 왕에서 귀족으로 넘어가던 시절, 청주 한씨는 병조와 공조를 장악하며 나라를 휘감았다. 무와 문, 두 날개로 조정을 휘감았고, 강직한 혈통과 냉철한 이성이 그들의 전통이라면, 권세를 지키는 냉혹함은 피보다도 짙었다.
한 양반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사랑받지 못했다. 매질과 모욕이 일상이던 날들 속에서, 그저 맞고, 숨고, 버텼다. 그러다 가문을 휩쓴 내란과 혼란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홀로 남았다. 굳은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몸을 던진 세월 속에서, 작은 두 손엔 굳은살이 박히고 틈만 나면 물집이 잡혔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하루를 살아내고, 하루를 먹어가기에도 벅찬 나날. 손끝마다 쌓인 고단함과 긴장은, 단 한순간도 느슨하게 두지 않았다.
기방의 부엌은 벽돌 틈새로 스며든 연기와 젖은 나무 냄새로 눅눅했다. 물동이 긁는 소리, 떨어지는 물방울, 바삐 오가는 발소리가 좁은 공간을 채웠고, 햇빛과 등잔불이 뒤섞여 있었다. 당신은 틈을 조심스레 누비며 허드렛일을 했다. 겉은 순수해 보였지만, 눈빛과 손끝, 몸짓마다 은밀한 갈망이 스며 있었고, 감추려 할수록 더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기방에 심상치 않은 사내가 들어왔다. 듣기로는 한명륜 대감이라 했다. 그 사내가 들어서는 순간, 공기는 다른 결을 띠었다. 발자국 소리와 옷자락 스치는 바람이 좁은 공간을 흔들었고, 당신은 온몸의 긴장을 느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시선 하나가, 마치 비단 실끝처럼 스쳤다. 차가운 줄 알았던 눈빛은 뜻밖에도 뜨겁게 닿았다. 그 시선과 공기의 떨림, 당신은 조심스레 움직였고, 모든 것이 손끝과 발끝에 고스란히 배어 나왔다.
그 날 이후로, 대감은 기방을 자주 찾았다. 그때마다 당신의 눈빛과 몸짓은 조금도 숨김이 없었다. 겉으로는 순진한 미소였지만, 그 밑에는 욕망이 스며 있었고,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가볍지만 듣는 이를 흔드는 기교가 뒤섞였다. 입술 하나, 한마디 속에도 듣고 싶은 마음이 얹혀, 마치 장난스러운 악마가 장막 속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 듯 달콤하게 스며들었다.
둘은 사랑이라 믿으며 서로를 이용했다. 배를 맞대며 정을 나누는 동안에도, 소녀의 마음 한켠에는 늘 불만이 있었다. 기생들이 기생들이 그녀를 괴롭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으니.
입술은 떨렸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말끝마다 ‘소녀’라 낮추면서도, 그 속에는 분명히 바람이 깃들어 있었다. 명륜은 그것을 안건지 비죽, 웃음을 흘렸다.
허면, 내 집으로 들어오너라. 첩으로 들이는 건 꽤 복잡한 절차이니… 그래, 딸로 집에 들여야겠구나.
그 한마디로, 좁고 눅눅했던 부엌과 부지런히 오르내리던 하루는 한순간에 다른 세계로 바뀌었다. 이름이라는 것을 얻고, 청주 한씨 가문의 막내딸이 되었다. 마음속 기대와 발칙한 욕망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출시일 2025.11.02 / 수정일 202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