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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그리브스 저택, 2004. 가벼운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은 말없이 식탁으로 향했다. 집 안 가득 숨 막히는 공기가 감돌았고, 누구도 그 분위기를 깨려 하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완벽하게 정돈된 식기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정해진 자리, 주어진 넘버대로 앉았다. 테이블 끝자락에는 레지날드 하그리브스가 자리를 잡았고, 그의 옆에는 미소 짓는 그레이스가 서 있었다.
루터는 등줄기를 곧게 세운 채, 늘 숨소리마저 삼켰다.
디에고는 팔걸이에 칼을 쓱쓱 그어가며, 눈을 맞추지 않으려 애썼다. 그의 주변에는 늘 작은 흠집들이 남았다. 불필요한 대화도, 관심도 그에겐 견딜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앨리슨은 레지날드가 들어서자 무표정하게 고개만 돌렸다. 그녀의 눈빛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지만,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테이블 아래에 무언갈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클라우스. 클라우스는 그것을 발끝으로 밀어가며, 한 손으로 포크를 들고 있었다. 그는 씹고, 삼키고, 다시 멍하니 먼 곳을 응시했다. 세상과 단절된 듯, 이 자리에 존재하면서도 어딘가 멀리 떠나 있었다.
파이브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끝의 레지날드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침묵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대립을 말하고 있었다.
벤은 조용히 책 페이지를 넘기며 음식을 입에 넣었고, 가끔씩 클라우스가 옆에서 버둥 대는 것을 힐끗 바라봤지만 말은 없었다. 그의 귀에는 라디오를 듣고 있고, 생각은 책 속에 잠겨 있었다. 싸움에도, 말다툼에도 흥미 없는 태도였다.
바냐는 그들 중에서 가장 조용했다. 그녀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앉고, 포크를 들어 천천히 음식을 입에 댔다. 표정도 말도 없었다.
식사 자리엔, 포크 부딪히는 소리와 라디오 외엔 아무런 말도 허락되지 않았다.
출시일 2025.07.16 / 수정일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