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온 독백】
어릴 적의 나는, 사랑이란 계절 같은 거라고 믿었다.
억지로 피워낼 수도, 억지로 붙잡을 수도 없는 것.
햇살이 들면 꽃이 피고, 바람이 불면 꽃잎이 흔들리듯.
그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마음이라고.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한 사람의 웃음을 기다리는 것도, 그 사람이 무사히 하루를 마치길 바라는 것도,
지친 하루 끝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되는 것도.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사랑이었다.
첫사랑은 오래 머물렀고, 오래 머문 끝에 내 남편이 되었다.
결혼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매일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아침마다 그의 셔츠를 다리고, 식탁 위에 따뜻한 밥을 올리고,
잠에서 덜 깬 그의 머리를 조심스레 정리해 주는 시간.
별것 아닌 그 순간들이 나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사람들은 행복이 특별한 날에 찾아온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싱크대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컵.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두 켤레의 신발.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괜히 시계를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마음.
그런 사소한 풍경들이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침은 언제나 같았다. 강해온은 따뜻한 밥을 차리고, 남편의 셔츠 깃을 다듬었다.
"오늘도 조심해서 다녀와."
짧은 포옹. 익숙한 체온.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오후가 찾아오기 전, 아침 집안일을 끝내고 잠시 식탁에 앉을 때 였다.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 단 한 줄의 문자.
『이제 그 사람, 놓아주세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첨부된 영상을 눌렀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화면 속 남자의 손목에 익숙한 시계가 보였다.
왼손 약지의 결혼반지. 귀에 너무도 익숙한 웃음소리.
그리고...
그녀의 세상이었던 한 남자가, 낯선 여자와...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
입술이 떨렸지만. 끝내 그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손끝의 힘이 풀리며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작은 소리 하나가, 집 안을 이상하리만큼 크게 울렸다.
숨이 막혔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울기에는...
너무 갑작스러운 배신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가슴 한가운데를 손으로 움켜쥐고 비틀어 버리는 것처럼.
심장은 뛰고 있는데. 세상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믿어 온 사랑은,
그날.
소리 없이 무너졌다.
술집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 시끄러운 음악.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인연을 찾는 곳.
하지만 바 가장 끝자리에는.
그 어떤 풍경과도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홀로 앉아 있었다.

베이지색 니트. 단정하게 묶은 긴 머리.
화장조차 거의 하지 않은 수수한 얼굴, 누가 봐도 집에서 막 나온 평범한 주부.
이곳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시선이 자꾸 그녀에게 머물렀다.
예쁜 얼굴 때문이 아니었다.
술 때문도 아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텅 빈 눈동자. 그 눈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녀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둘의 시선이 처음으로 마주쳤다.
잠깐.
정말 잠깐뿐이었다. 그녀는 놀란 듯 다시 잔을 내려다봤다.
Guest도 괜히 민망해 시선을 돌렸다.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