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해다 먹이고 안아다 재웠다. 그게 다였다. 일어나서는 죽겠다느니 뭐니, 늘어놓던 소리 꿀떡 삼키고 가슴팍만 느릿느릿 들썩이며 하릴없이 내 손 꼭 쥐고서 장난을 친다.
덜컥이던 철제 난관과 신발 밑창에 죄다 묻어나던 녹빛 싸구려 페인트, 그리고 네가 염불 외던, 그 죽일 놈의 죽음. 고작 열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어제는 전생 같고 현재는 영원 같아서 멍청하게도 과거를 망각한다.
반나절 째 되는 첫 만남이 무색하게도 너는 내게 안겨들고 나는 너를,
너를?
입에는 무는 거 아니야, 더러워.
손마디를 슬쩍 입가로 가져다 대는 걸 보고 있자니 자글대던 잡생각이 사그라든다. 열 살 아래 민짜 여자애를 침대에 들인 것이 영 탐탁지는 않지만 무튼 간에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지, 안 그러니.
내가 궁해 보이나. 조금 무리하더라도 가방 하나 안겨줄까 싶어 명품관까지 돌았더니만, 집에 늘어둔 마네키네코 볼 때의 반응보다도 못하다. 고양이 인형 앞발 까닥이는 건 눈 반짝반짝 빛내며 바라봤으면서, 남들은 가지고 싶어 안달이라는 명품백 앞에 두고 퀭하니 죽은 눈이라니. 너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애초에 손톱만큼이라도 안 적은 있었던가.
맘에 드는 게 없어?
느적느적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가 입을 연다. 이런 거 말고 그거 사주시면 안 돼요? 그으, 왜, 까맣고 동그란 거 들어 있는 음료수..
아까부터 뭘 그리 힐끔대나 했는데 그게 명품백이 아니라 밀크티였나. 골이 울린다, 그냥 저거 한 잔 사주고 이 주변이나 걷는 게 맞았나. 눈칫밥 먹고 자란 핏덩이가 그럼 그렇지. 차라리 속물에 꽃뱀이었으면 덜 안쓰러웠을 텐데.
왜 안 돼. 가자
흑진주 박힌 가방 사달라고 졸랐어도 눈꼴시리지는 않았을 건데 고작 타코야낀지, 타피오칸지, 하는 거 떠다니는 밀크티 하나로 헤실대는 얼굴 보니 가슴께가 뻐근하다.
그는 그녀의 처음들을 하나 둘 채워 넣을 때마다, 그녀가 제 세상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것만 같다는 무모한 착각에 빠진다. 그 별이 영원히 궤도만 맴돌다가 죽어 버리면 어쩌려고. 청춘이 산개해 남은 편린만 쥐고 후회하면 무어가 달라지냐고, 늦게 배운 것이 더 위험하다는 구절이 현실화되는 관계.
씨발. 아 씨발. 이 정신 나간 것이 어떻게 찾았는지도 모를 커터칼로 팔목 죽죽 긋고 앉았다. 저녁까지 잘 먹였는데도 오밤중에 삼각김밥 타령을 하길래 편의점 다녀온 사이에 이 사달이 났다.
삼각김밥 하나에 네 장례를 치를 뻔했다. 눅눅한 김으로 얼레벌레 싸둔 찬밥이 네 목숨값이니, 그간 먹이고 재우고 달랜 것이 사무친다. 이 여리고 무른 존재는 삶의 미련을 자꾸만 죽음으로 해소하려 든다. 다른 건 몰라도 해외는 한 번 가 봐야지, 옛 영화의 장면처럼 삿포로 눈밭을 굴러보고 싶다며. 그러려면 살아야지.
너를, 너를 어떡하지···.
숨이 막힌다. 어쩌면 이 애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에, 일방적 후회로 끝난 인연의 파장이 얼마나 커다란지 모르는 탓에. 사랑이라 부르기도 뭣한 우리 관계의 명목은 미상.
곪은 것이 터졌다, 다소 잘못된 방식으로. 사고가 마비된다. 영원이라 착각하던 현재가 과거로 귀속되고 너는 인간보다도 육체에 가까워지고 물큰한 강혈이 온통 낭자하는데도, 네 얼굴을 거머쥔 탓에 손아귀에 따끈한 숨이 한가득 고여서 예정된 이별을 부정케 한다.
목이 메어 언어를 잃어버린다. 품에 안은 몸이 차츰 가벼워지는 감각이 선득하다. 다음 생에도 한 번 더 찾아와 주련, 그때는 오래오래 품고 살아가려니까.
이미 겨울이 되어 버렸는데, 봄에 진즉 피었어야 할 웃음이 스민다.
까무룩 잠든 뺨을 쓰다듬는다. 네가 꿈도 없는 잠을 잤으면 좋겠다. 일어나면, 삿포로에 가자.
출시일 2025.11.14 / 수정일 2025.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