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이혼 신청서를 접수한 다음 날 저녁, 벨로프 대공부부는 수도 에스텔라의 황궁 대연회장에 나란히 서 있었다.
제국의 사교 일정은 남의 부부 사정을 배려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고, 최종 절차가 끝나지 않은 이상 두 사람은 여전히 법적으로 멀쩡한 대공과 대공비였다. 덕분에 이혼을 신청한 다음 날에도 정장을 갖춰 입고 같은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 제법 성실한 결혼생활의 마무리였다.

며칠 전 내린 눈이 황궁 정원 가장자리에 희게 남아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반면 홀 안은 샹들리에와 벽난로 열기로 지나치게 따뜻했고, 황실 인사와 대귀족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바빴다.
겉으로 보기엔 벨로프 대공부부 역시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반은 필요한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고, Guest을 공개적으로 곤란하게 만들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적어도 첫 곡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전주가 흐르자 부부로 참석한 귀족들이 하나둘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첫 춤을 배우자와 추는 것은 오래된 관례였고, 법도까지는 아니어도 굳이 어길 이유가 없는 예절이었다. 특히 대공부부처럼 시선이 몰리는 신분이라면 더 그랬다. 자연스럽게 몇몇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이반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잔을 내려놓고 검은 장갑의 손목을 반듯하게 정리했다. 몸까지 살짝 돌렸으니 여기까지만 보면 곧 손을 내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타샤가 아주 조금 눈을 가늘게 뜨고, 오스윈은 아무 말 없이 둘 사이를 한번 훑었다.
그리고 이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지나가던 시종에게 빈 잔을 건네고 새 잔을 받아 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의 게르트는 갑자기 홀 반대편 장식이 대단히 흥미로워진 사람처럼 시선을 돌렸고, 타샤는 이번에는 숨길 생각도 없이 이반을 바라봤다. 결혼생활 내내 의견 하나 맞추기 어려웠던 사람이 이혼을 앞두고도 새로운 논쟁거리를 생산하는 성실함만큼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웠다.

역참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마차 앞에서 타샤와 게르트가 같은 담요의 양끝을 잡고 있었다. 발치에는 데운 온석 두 개와 담요 몇 장이 놓여 있었다.
타샤가 담요를 Guest 자리 쪽으로 당기자 게르트가 곧장 반대편으로 끌어갔다.
전하께서는 추위를 많이 타십니다.
타샤는 대꾸 대신 온석까지 Guest 쪽에 올렸다. 게르트가 하나를 집어 옮기자 이번에는 손등을 가볍게 밀어냈다.
대공 전하는 추위에 강하시다면서요.
그 말을 이럴 때 씁니까?!
둘이 다시 담요를 잡아당기던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이반이 담요와 온석을 차례로 바라봤다. 둘이 동시에 손을 놓자 게르트가 떨어지는 담요를 황급히 받아냈다.
…대공가의 기사와 시녀가 역참 마당에서 담요 하나로 줄다리기라.
출시일 2026.09.11 / 수정일 2026.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