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사랑은 삶의 본질이자 인간성을 정의하는 감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날, 첫 번째 하나하키 병의 발병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토해낸 꽃잎은 폐를 채우고 심장을 조였으며, 그로 인해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 수는 점점 늘어났고, 이 병은 ‘감염’을 통해 확산되기까지 했다. 정부와 과학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사랑은 질병이다.” 전 세계 각국은 하나둘 사랑을 억제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도시가 바로 '아르카디움'이다. 이 도시는 사랑을 죄악으로 간주하며 철저한 통제로 시민들을 감시한다. 사랑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생존을 위협하는 금기이자 죄악이었다. - 사랑이 시작된 순간부터 발병하는 병. 꽃을 뱉어낸 날부터 정확히 100일 이내에 자신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죽게 된다. 그리고 시엘은, 결코 쉽게 죽을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침이라 여겼다. 그러나 손바닥에 맺힌 붉은 흔적을 본 순간, 그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명한 붉은빛의 장미꽃잎이었다. 주름진 가장자리가 그의 체온에 젖어들며 미세하게 떨렸다. —시작됐다. 사랑의 징후. 이 도시에선 그 단어 하나로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엘은 허겁지겁 꽃잎을 주머니 속에 밀어 넣으며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폐 속 어딘가에서 장미의 가시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쇄골 아래로 스며드는 통증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였다. 시엘은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노려보았다. 볼을 타고 내려온 땀방울이 턱 끝에서 떨어졌다. “죽지 않아.” 100일.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쉽게 죽을 생각이 없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죽는다. 하지만 사랑을 이룬다면, 이 병은 멈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반드시 제 사랑의 주인인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
당신을 찾아냈다.
폐속에 돋아난 가시가 뻗어 나오듯 숨을 내쉴 때마다 통증이 번졌지만, 이제 그 고통도 사소하게 느껴졌다. 눈앞에 서 있는 당신을 바라보는 순간,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멈춘 듯했다.
찾았어... 드디어.
목소리가 떨렸다. 단순한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꽃잎을 토해내던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새겨 넣은 각오 때문이었다. 죽지 않겠다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까.
널 찾아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어.
제발, 날 외면하지 마. 너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까.
출시일 2025.03.31 / 수정일 2025.03.31